문화유산 속 과학읽기

천상행 열차노선도가 아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1세기 고구려’와 ‘12세기 조선’의 별자리 지도
“돌에 새긴 천문도는 옛날 평양성에 있었는데, 병란 때문에 강에 잠겨 없어졌다. (중략) 전하가 천명을 받은 후(조선 개국 후) 어떤 사람이 활자로 찍은 천문도를 바쳐 (중략) 전하께서 이를 보배로 귀중하게 여겨 (중략) 돌에 새기에 하니…”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학자인 권근(1352~1409)이 남긴 ‘천상열차지도분야’의 제작경위다. ‘평양성의 병란’은 고구려의 멸망 시기(668년 무렵)로 해석된다. 그 때 천문도가 대동강에 빠져 사라졌는데, 700여 년이 지난 조선 개국 직후(1392년 무렵) 천문도 인쇄본을 갖고 있던 어떤 사람이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천문도’가 과연 무엇이기에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보배처럼 여겨(殿下寶重之)’, 다시 돌에 새기도록 명령했을까. 왜 새롭게 새긴 천문도에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천상행 열차노선도가 아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제공 : 국립고궁박물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천상행 열차노선도’가 아니다. 한문 그대로 ‘하늘의 모습(천상·天象)을 차(次)와 분야(分野)로 벌려놓은(열·列) 천문도(천문 그림)’이다. ‘차’는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이 움직이는 길(황도)을 따라 관측되는 동양의 별자리를 12개 영역으로 나눈 것을 가리킨다.
‘분야’는 하늘의 별자리 영역 12차를 그대로 지상의 12개 왕조와 대응시킨 것이다. 지상의 해당 왕조는 중국 춘추 시대 12개국인 주·초·정·송·연·오·제·위·노·조·진(晉)·진(秦)나라를 가리킨다. 이처럼 중국의 왕조를 대응시킨 것이 조선의 현실에 맞지 않다고 해서 조선의 땅을 적용시킨 천문도도 남아있다.
이와 같은 우주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하늘과 땅이 다를 바 없다. 하늘의 섭리가 땅에서도 통하고, 땅의 원리가 하늘까지 닿는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유교관념이 투영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들춰볼까. 모두 290개(혹은 295개) 별자리와 1,467개의 별을 크고 작은 별자리 이름까지 빠짐없이 적었다. 가장 바깥의 원 주위에는 28수(달의 공전주기인 27.32일에 따라 북극성을 중심으로 28개 구획으로 나눈 별자리)의 이름을 차례로 기록했다. 앞서 밝혔듯이 28개 구획의 별자리를 12차로 나눠 지상의 왕조 12개국에 대응시켰다.
한 가운데 중심원에는 1년 내내 관측되는 별들을 표시했다. 하늘나라(천국)의 옥황상제와 신하, 백성들이 살고 있다는 자미원·태미원·천시원이 모여 있다. 무엇보다 두 개의 원이 겹쳐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중 한 원은 지구의 적도를 연장한 선이다. 또 하나의 원은 지구에서 바라봤을 때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黃道)를 나타냈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돌기 때문에 황도와 적도는 교차되어 움직인다. 이 두 선을 중심으로 별자리를 관측하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즉 겨울철에는 황도가 적도 아래로 내려가고, 여름에는 위로 올라온다. 태양이 적도보다 가장 낮게 내려가면 동짓날이 되고, 가장 높이 올라가면 하짓날이 된다. 겨울철에는 태양이 낮게, 여름에는 높게 움직이는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그 아래에는 천문도와 관련된 다양한 설명문과 그림이 들어있다. 권근이 쓴 천문도 제작 내력과 의미, 제작에 참여한 관원들의 이력, 제작연월일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세기 고구려 별, 14세기 조선 별

1395년(태조 4년)에 제작된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작된 ‘석각(돌에 새긴) 천문도’로 알려져 있었다.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1247년)’보다는 148년 늦게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천문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중국 따라쟁이’는 결코 아니었다.
우선 “천문도를 새기라”는 태조의 명을 받은 서운관(천문관)은 이의를 제기했다. “이 그림은 세월이 오래되어, 별의 위치가 달라졌다”면서 “다시 측정해서 고쳐 새겨야 한다”고 건의한 것이다.
무슨 말일까. 지구의 북극점은 고정불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는 약 2만 6,000년이라는 긴 주기를 두고 조금씩 이동한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면서 별들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당대의 천문학자인 류방택(1320~1402) 등은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조선의 천문관들은 당시 북극에 맞춰 중성(28수 가운데 해가 질 때와 돋을 때 하늘의 정남쪽에 보이는 별)을 면밀하게 계산해서 오차를 조정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흥미로운 결과도 얻어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가운데, 즉 북극성 중심의 별들은 14세기, 그 밖의 별들은 1~3세기 무렵의 위치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것이 바로 1395년 무렵 조선 천문관들이 조정한 오차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세기 무렵의 별자리를 새긴 가장 오래된 석각(돌에 새긴) 천문도라 할 수 있다. 멀게는 1,400년, 가깝게는 700년의 시공을 초월한 ‘고구려와 조선 천문관’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중국 ‘순우천문도’와는 다른 요소들이 또 있다. 모양, 별의 개수, 연결선이나, 이름이 서로 다른 별자리가 여럿 있다. 또 서로의 천문도에는 보이지 않는 별자리(한국 5개, 중국 3개)도 보인다. 무엇보다 1,467개의 별을 새길 때 실제 밝기에 따라 구멍의 크기를 모두 다르게 한 사실까지 밝혀냈다. 이것이 바로 고구려·조선 천문관들의 경이로운 꼼꼼함인 것이다. 이런 표현은 중국 천문도에는 없다. 한반도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고구려 벽화고문의 별자리 새김 방식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인 것이다.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1395년·석각)

보물 천상열차분야지도(17세기말·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1571년·목판)

천문도는 왕권의 상징

그렇다면 태조 이성계는 왜 천문도 제작을 조선개국의 ‘국정 제1과제’로 삼았을까. 군주들은 예로부터 ‘민심은 곧 천심’이며, ‘하늘의 조화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곧 백성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것’이라 믿었다.
유명한 고사가 있다. 중국 하나라 시조 우임금은 9개국 제후가 바친 청동을 모아 ‘아홉개의 솥(구정·九鼎)’을 만들었다. 이 청동솥은 ‘태평성대’와 ‘왕권’의 상징이 되었다. 태평성대의 시대에는 나타났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자취를 감췄다.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서 9개 중 8개가 사라졌다. 단 하나 남은 것조차 사수(泗水·산둥성에 있는 강 이름)에 빠졌다. 훗날 6국을 통일한 진시황(기원전 247~기원전 210)이 강바닥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천문도’ 역시 그런 ‘왕권’의 상징으로 여겼다. 개국 초기 민심을 얻는데 어려움에 빠진 태조 이성계로서는 자신이 천명, 즉 하늘의 명을 받은 인물임을 보여줘야 했다. 그럴 때 어떤 이가 나타나 천문도를 바쳤으니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숙종 연간인 17세기 말에 다시 새겼다. 태조 때 만들어진 돌판이 마모되어 알아보기 어렵게 되자 다시 판각한 것이다. 1770년(영조 46년)에는 관상감 안에 흠경각을 마련해서 태조 때 제작된 석각본(국보)과 숙종 때 다시 새긴 복각본(보물)을 나란히 옮겨 두었다. 신·구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나란히 보관해둔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소풍객 도시락 받침테이블?

그런데 난세가 되면 사라진다는 청동솥, 즉 ‘구정(九鼎)의 고사’가 있지 않은가. ‘천상열차분야지도’도 국권침탈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일제 강점기, 일제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궁궐을 훼철·유린하는 것이었다. 창경궁을 박물관과 동·식물원으로 격하했다. 그때 ‘천상열차분야지도’도 창경궁 명정전(정전)의 툇간 노천에 내놓았던 것이다.
1960년 무렵 과학사가인 전상운 교수 등이 찾아낼 때까지 신·구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어떤 취급을 받았을까. 나들이나 소풍 온 학생·가족들이 도시락을 펴놓고 앉기에 안성맞춤인 돌판 테이블로 전락했다.
새삼 조선 중·후기 문인·학자인 계곡 장유(1588~1633)가 ‘천상열차분야지도’ 인쇄본을 보고 지은 시가 심금을 울린다.
“한 조각 천문도 기막히게 다 보이네(圖成一片妙堪看) (중략) 종이 한 장에 삼라만상 모두 담겨 있는걸(法象都輸片幅看) (중략) 사계절 원기 잘 맞추면 태평성대 이루리니(玉燭調元期聖代)…” <계곡집>
이 신·구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새롭게 단장한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 상설 전시장에 전시중이다. 전시된 45건의 과학문화재 가운데 단연 주인공 대접을 받고 있다. 시간이 난다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어려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아주 쉽게 설명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