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판도라 행성 과학리포트

‘아바타’

컴퓨터 그래픽, 슈퍼컴퓨터, 수중로봇
과학기술이 총망라 된 스펙타클
영화 ‘아바타: 물의 길’ 포스터

스펙터클 그 자체다. 상상력 넘치는 스토리에 첨단 컴퓨터 그래픽이 어우러진 웅장하고 화려한 영화 아바타(Avatar)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순위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명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영화 최초로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기록적인 작품이다.
아바타는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가 자연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처럼 숲과 바다가 있는 행성 판도라로 대규모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거대한 자연 생태계 판도라를 지키려는 나비족과 새로운 자원을 정복하려는 지구인 사이 벌어지는 갈등과 전쟁 속에서 지속 가능한 생존문제나 환경문제 같은 주제의식을 녹여냈다. 영화는 인류가 푸른 숲과 바다 같은 대자연의 수호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미래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과학기술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의미가 담긴 영화라 볼 수 있다.
특히 아바타는 그래픽 과학기술 측면에서 전무후무한 영화다. 지난 2009년 개봉 당시 아바타는 3차원 시각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3D 안경을 쓴 관객들은 현실감 넘치는 배경묘사와 생동감 넘치는 모션효과 등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특수효과에 열광했다. 2022년 말 개봉한 아바타 2편에서도 차원이 다른 상상력과 컴퓨터 그래픽(CG) 기술력으로 관람객들에게 경이로움을 선물했다. 실제보다 더 실감 나는 아이맥스나 4DX관에서 아바타를 관람하는 것이 영화에 대한 예의일 수 있다. 이러한 ‘영화적인 경험’은 TV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아바타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바타는 총 5편까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바타 2편이 첫 작품 이후 13년 만에 개봉했고, 앞으로 3편이 더 남았다. 2024년 개봉이 예고된 아바타 3편 ‘씨앗 운반자’와 4편 ‘툴쿤의 기수’, 2028년경 5편 ‘에이와를 찾아서’가 마지막 개봉하여 마지막 계보를 이을 예정이다.

실제보다 더 사실 같은 CG의 비결

아바타 속 3D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덕분에 관객들은 주인공을 실제 배우라고 착각할 정도다. 어떻게 CG만으로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을까. 특히 아바타 2편은 물과 관련된 CG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물빛을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빛이 한 땀 한 땀 반사되고 굴절되는 하나 하나의 점들이 깨알같이 화면에 투영된다.
아바타 2편의 자연스러운 수중 장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고사양의 컴퓨터를 활용해 복잡한 물의 물리역학을 세밀하게 계산해 낸 결과다. 3시간이 넘는 아바타 화면들은 초당 약 4억 개의 점(픽셀)에 대한 계산으로 만들어졌다.
3D 오브젝트는 형태를 모델링한 후 렌더링(Rendering) 작업이 이뤄진다. 렌더링 과정 중 3D 오브젝트의 각도에 따른 빛 반사, 굴절, 음영, 투과 등의 수치를 계산해야 한다. 아바타의 압도적 화질은 4K HFR(High Frame Rate) 사양이다. 4K는 가로 3,840개, 세로 2,160개의 픽셀, 약 830만 개의 점이 찍혀 화면을 구성한다. 각 픽셀이 갖는 물리적 특성을 모두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슈퍼컴퓨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존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 Central Processing Unit)만을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그래픽카드 전용 처리장치(GPU : Graphics Processing Unit)를 이용해 연산 성능을 높인 슈퍼컴들이 등장했다. GPU는 수많은 코어를 기반으로 동시에 개별 그래픽 값을 계산하는 것이 특징이며, 많은 CG가 사용되는 영화에도 필수 아이템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우주, 바이오, 재난재해, 전염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보유한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의 성능이 가장 앞선다. 70억 명이 420년 동안 계산할 양을 1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25.7 페타플롭스 성능이다. 최근에는 페타(Petabyte)를 넘어 엑사(Exabyte)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1 엑사는 100경 바이트다. 미국 AMD사가 ‘프론티어’라는 1.1 엑사 슈퍼컴을 공개한 바 있다고, 2023년에는 인텔의 2 엑사급 슈퍼컴 ‘Aurora’를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2024년 KISTI에서 0.6 엑사급 슈퍼컴 확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바타 속 다양한 모빌리티들

KRISO가 개발한 수중 6족보행로봇 ‘크랩스터’ (출처 : KRISO)

아바타 2편에는 다양한 모빌리티들이 등장한다. 고래처럼 생긴 툴쿤을 사냥하기 위한 함선 ‘시드래곤(Sea Dragon)’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시드래곤은 상황에 따라 바다 위를 항해할 수 있고, 수면 위를 떠서 비행할 수도 있다. 이는 하늘을 나는 배로 알려진 ‘위그선(WIG Ship)’의 형태이다. 지면이나 수면에 가깝게 비행할 경우 유도항력이 감소하고, 양력이 증가하는 지면효과를 이용한 선박의 형태다.
위그선이 과연 비행기냐 배냐를 두고 논란이 있다. 국제해사기구(IMO :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에서는 수면 위 150 m 이하에서 움직이는 모빌리티는 배라고 정의했다. 위그선은 공항이 별도 필요 없고 바다 위 어디서나 이착륙이 가능하다. 바다 위에서 시속 550 km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실제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기술적 장애물이 존재한다. 100인승 위그선 개발을 시도했지만 아직 성공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아바타 2편의 수중로봇 중 ‘크랩슈트(Crab Suit)’는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의 해양탐사 로봇인 ‘크랩스터(Crabster)’와 비슷하다. 크랩슈트는 4족 보행을 하고 두 개의 집게를 움직이며 물체를 잡는다. 꽃게가 실제 빠르게 유영하고, 표면 돌기와 털로 물 속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처럼 크랩슈트도 그러한 특징을 살렸다. KRISO의 크랩스터는 빠른 조류 속에서도 안정적인 6족 보행으로 해저탐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조류가 있더라도 게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이동할 수 있다. 크랩스터뿐만 아니라 해저망간단괴 채취로봇 미내로와 해미래와 같은 다양한 수중로봇들이 해양탐사, 자원채취, 수중건설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어망 제거 로봇도 개발 중이다. 아바타 시리즈에 등장하는 초거대 군수기업 RDA의 군수용 수직이착륙 헬리콥터는 한화, 현대 등 국내 대기업에서도 관련 컨셉의 헬리콥터를 개발 중이다.

울창한 숲에서 드넓은 바다로

아바타 2편의 주 배경이 숲에서 바다로 간 이유가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소문난 물(심해) 덕후다. 해양생물학과 물리학을 함께 전공한 덕분에 물리법칙과 유체역학의 원리가 거의 완벽하게 그래픽에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카메론 감독은 2014년 직접 제작에 참여한 1인용 유인잠수정을 타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 만 천미터 챌린저 해연에 단독으로 잠수한 기록을 갖고 있다. 카메론 감독은 스스로를 영화 제작자(Film Maker)이자 탐험가(Explorer)라고 소개한다.
카메론 감독 영화 중 1989년에 개봉한 어비스(Abyss) 또한 심해를 다룬 영화다. 지금까지 해양 속 환경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 어비스보다 심해를 디테일하게 그려낸 영화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비스에서 보여주는 심해의 시각적 디테일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카메론 감독은 1997년 타이타닉뿐만 아니라 총 6~7편의 바다 관련 다큐멘터리도 제작한 바 있다.
아바타의 수중 장면을 더욱 실감 나게 선보이기 위해 배우들이 직접 프리 다이빙을 하면서 움직임을 캡쳐했다. 배우들은 세계 최고 잠수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깊은 숨을 쉬어가며 수중 촬영을 감행했다. 프리 다이빙 촬영 과정에서 시고니 위버 배우가 6분, 케이트 윈슬릿이 7분 14초의 잠수시간을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크루즈의 6분 잠수 기록을 뛰어넘었다. 프리 다이빙 잠수 세계 신기록은 24분 33초다. 스펙타클 그 자체의 영화 아바타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슈퍼컴퓨터 등 첨단 과학 기술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치밀한 열정과 배우들의 열연이 종합되지 않았더라면 탄생할 수 없었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