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치는 겨우내 먹어야 하는 만큼 양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이웃들이 서로 돌아가며 ‘김장 품앗이’를 했다. 품앗이란, 말 그대로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며 품을 지고 갚는 일이다. 먼저 김치를 담근 집에서 사용하고 남은 소금물을 다른 집에서 돌려가며 사용하기도 했다. 이웃끼리 노동의 수고로움과 정다움이 오갔다. 그 틈 사이로 서로의 김장 비법까지 은밀히 공유했다. 우리 집 김치 맛에 옆집 김치 맛 비법이 더해지면서 매년 김치 맛은 더욱 깊고 다채로워졌다. 어느 겨울에는 옆집 김치 맛이 났다가, 다음 겨울에는 아랫집 김치 맛이 나기도 했다. 지금처럼 마트에서 판매하는 획일적인 김치 맛에 익숙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이다.
김장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돼지고기 수육에 막 담근 김치를 싸서 먹는 운치가 있었다. 장시간 노동을 함께 견디며 무사히 김장을 마친 기념으로 작은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품삯 대신에 김치를 받아 갔다. 비록 온몸은 뻐근하지만, 한 손에는 김치를 다른 한 손에는 이웃의 정까지 두둑이 챙겨갈 수 있었다.
김장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뛰어넘는다. 과거에 어려운 시기를 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인 만큼, 우리는 이 빨갛고 매운 것을 담그며 마음속에 풍요로움을 담았다. 또한 여러 손으로 함께 담근 김치를 겨울 내내 맛보며 화합과 결속력을 다졌다. 한국인만이 누릴 수 있는 따듯한 문화다. 2013년 유네스코가 김장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