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산후조리원은 필요 없다

<팟 제너레이션>

SF 코미디 영화 <팟 제너레이션(The Pod Generation)>은 깔끔하다. 가까운 미래 뉴욕에 사는 신혼부부 ‘레이첼(에밀리아 클라크 분)’과 ‘앨비(치웨텔 에지오포 분)’에게 경사가 생겼다. 대형 테크기업에서 인공지능 비서를 개발하는 레이첼은 승진 통보를 받았고 게다가 자궁 센터(Womb Center)에 자리가 생겼다. 자궁 센터는 난자와 정자를 체외에서 수정해서 수정란을 인공 자궁에서 키운 뒤, 아기를 출산까지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자들에게 폭발적 인기다. 게다가 계약금은 다니는 회사에서 지원해 준다. 자연주의 식물학자인 남편 앨비가 반대할 게 뻔하니 레이첼은 혼자 자궁 센터를 방문한다. 솔깃한 설명과 함께 가격표를 받는다. 남아 $ 20,200, 여아 $ 19,700, 자연선택 $ 20,550, 맞춤 아기 $ 21,550. 집에 와서 뜸을 들이다 남편에게 슬그머니 이야기하니 대뜸 “아기가 알에서 나오게 대기를 건 거네.”라며 섭섭함을 드러낸다. 레이첼은 “시간을 끌면 자리를 뺏긴다.”고 밀어붙인다.

인공 자궁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공 자궁은 알처럼 생겼고 아이팟처럼 도킹 스테이션에 연결해 핸드폰 앱으로 각종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통제할 수 있다. 아기처럼 배고프면 경고가 뜨고 간편하게 영양분을 공급할 수도 있으며 아기에게 들려주는 음향, 음악도 선택할 수 있다. 드디어 여성은 출산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주변 여자들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인공 자궁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아일랜드>, <매트릭스>, <스타워즈> 등의 영화에서 이미 등장했다. 2017년 미국의 필라델피아 아동병원(CHOP)의 태아연구센터는 초미숙양을 자궁과 유사한 환경을 갖춘 플라스틱 백에 넣어 4주간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병원은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의 승인을 신청해 놓았다.

올해 초 유튜브에 올라온 하셈 알가일리(Hashem Al-Ghaili)의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엑토라이프: 세계 첫 인공 자궁 시설(EctoLife: The World’s First Artificial Womb Facility)’이라는 영상인데, 가까운 미래에 착상부터 출산까지 모든 과정을 맡아 할 인공 자궁 시설을 상상한 내용이다. 조산이나 사산의 위험이 없고 앱으로 성장 과정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가상현실로 만져볼 수도 있다. 10년 안에 이 같은 시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거기에 우리나라, 일본을 이 시설이 꼭 필요한 나라라고 지목하고 있다.

팟 베이비에도 애착 이론이 통할까

임신 소식을 전해 들은 앨비의 엄마는 1974년 나온 애착 육아(Attachment parenting)에 관한 종이책을 보냈다.

“엄마가 애착 육아에 관한 책을 보내셨어. 애착의 형성은 아기의 공감 능력을 발달시키며 부모에게도 유익하대. 오래된 이론이네. 1974년이래. 아직 통할 지도 모르지.”라며 앨비는 중얼거린다. 집으로 팟을 데려온 부부의 반응은 딴판이다. 앨비는 점점 팟에 유대감을 보이고, 레이첼은 혼자만 소외된 기분으로 마음이 불편해진다.

애착 이론은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받은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John Bowlby, 1907~1990)에 의해 정립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의 적절하고 일관된 돌봄이 아이에게 안정적 애착(Attachment)을 갖게 하고 자신과 타인,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 심리적인 틀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만 3세~5세에 만들어진 틀이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에 대한 태도, 기대, 행동을 결정하고 배우자를 결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해리 할로(Harry Harlow, 1905~1981)의 실험도 볼비의 이론을 지지하는 결과를 보여줬다. 새끼 원숭이를 어미와 격리한 후, 한쪽에는 철망통에 우유통을 걸어 놓고 다른 한쪽에는 우유 없이 철망통에 헝겊을 싸 놓았다. 새끼 원숭이는 우유보다 헝겊 철망통 쪽을 선택했다. 새끼 원숭이에게도 애착을 위해 정서적 안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볼비는 생물학적으로 아기와 엄마는 서로에게 애착을 형성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특히 인간의 아기는 태어나면서 무기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관계는 다른 동물보다 강하다. 종의 유지를 위해 아기는 엄마를 찾고 엄마는 아기에게 집착하도록 본능적으로 세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임신기간 중에 강화되고 출산 후 아기-엄마 반응을 통해 마무리 된다.

내 아이의 애착의 종류는 무엇인가

볼비의 제자인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 1913~1999)는 애착 관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낯선 환경 실험’을 고안하였다. 엄마와 아기만 있는 실험실에 낯선 사람이 들어온 후 엄마가 나갔다 들어오는 상황에서 아기의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이다. 반응은 3가지로 나뉘는데, 불안해하던 아기가 엄마가 들어오면 금방 안정을 찾는 ‘안정 애착’, 별 반응이 없는 ‘회피 애착’, 화를 내고 진정이 안 되는 ‘저항 애착’이 그것이다. 회피 애착을 가진 아기는 엄마가 애착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자기표현이 서툴고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도 어려워하며 결국 자기만의 세계를 찾게 된다. 저항 애착을 갖는 아기는 엄마가 일관성 없는 애착을 보여주기 때문에 떼를 쓰고 울면서 자기의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투정을 부리게 된다고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이러한 애착 형태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저항 유형은 회피 유형의 침묵을 듬직함으로 생각하여 일관성이 있다고 오해해 호감을 느낄 수 있고, 회피 유형은 저항 유형의 화끈함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오해해 서로 마음이 끌릴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번 고정된 애착 관계는 성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유아기의 경험이 중요하다. 굳이 애착 이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임신과 육아는 부부에게 소중한 경험이고 굉장한 축복이다. 현대는 인공 수정으로 임신이 가능하고, 외국에서는 대리모를 통해서 임신 과정도 피해 갈 수 있는 시대이다. 기술적으로 인공 자궁은 가능하지만, 윤리적인 문제, 심리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우리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두렵고도 기대되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