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씨앗을 받는 일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 안도현의 시 [12월 저녁의 편지] -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 이후 농촌은 비교적 한가해진다. 추수 끝난 논바닥은 그루터기만 남고 김장배추를 거두면 밭농사도 마무리된다. 이 무렵부터 나 혼자 가만히 하는 일이 있다. 눈에 띄는 대로 씨앗을 받는 일이 그것이다. 풍접초, 금잔화, 코스모스, 백일홍, 맨드라미, 맥문동 씨앗을 봉투에 받았고, 사초류의 씨앗을 구하고 싶어 차 안에 빈 봉투를 비치해 두고 있다. 때로는 욕심을 부려 남의 꽃밭에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가는 일도 있고 가까이 사는 친구에게 씨앗 좀 나눠 달라고 칭얼거리기도 한다.

씨앗을 채취하는 일을 우리는 씨앗을 받는다는 말로 표현한다. 누가 보내주는 것을 받는다는 말일까? 식물이 주는 걸 사람이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매우 신비한 일이다. 한낱 식물이 자기 몸의 씨앗을 사람에게 내주고 사람은 정성을 다해 그것을 두 손으로 받는다. 이쯤 되면 식물은 신이나 선생님이나 웃어른 쯤 된다. 씨앗을 받는 일은 작은 생명체를 받는 일이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종자 번식의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씨앗을 받는 순간부터 나는 설렌다. 봄이 와서 씨앗이 싹을 틔우는 걸 공짜로 바라볼 수도 있고 새싹이 자라 꽃대 끝에 꽃을 내단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나는 흥분으로 들뜨게 된다.

씨앗들을 자루에 모아 담는다. 이들은 겨울에 깊은 잠을 잘 것이다. 내가 오들오들 떨며 두터운 점퍼를 입을 때도, 눈이 와서 온 산천이 흰 이불을 덮어도 잠에서 깨는 일은 없을 것이다.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읽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이라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74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데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기발하고 시적인 질문들이 많다. 이런 질문이 왜 필요할까 싶은 질문들이다.
나무들은 왜 그들의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는 나무의 가지만큼 무성하고 찬란하다. 드러내기보다 숨김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게 뿌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은폐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식물들이 씨앗 속에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겨울을 나듯이.
빗속에 서 있는 기차처럼 슬픈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보통은 기차를 빠르게 달리는 물체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비를 맞고 서 있는 정지 상태의 기차를 만났나 보다. 속도를 감춘 쇳덩어리, 직선의 질주를 잊어버린 휴식과 평화……. 수없이 많은 시간을 통과한 자의 슬픔이 기차의 슬픔일 것이다. 다음과 같은 문장 앞에서 우리는 또 시간이 뿌리는 비를 맞으며 질문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어렸을 때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 내 안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지구 곳곳에서는 여전히 끔찍한 전쟁과 살육이 지속되고 있다. 대륙과 대륙 사이 살상 무기가 거래되고, 학교와 병원에 로켓포가 날아들고, 하루아침에 아이들이 수십 명씩 피를 흘리고 죽어간다. 신이 일구어 놓은 세상에 인간의 욕망이 부딪쳐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어린 시절에 해맑은 영혼을 품고 있던 우리는 정말 어디에 있을까.

나는 요즈음 나 스스로 ‘꼰대’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두려워진다. 내 생각을 아랫사람에게 강요하거나 주입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만날 때도 나 자신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 세상을 여기까지 튼튼하게 키운 어른은 더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고 조금이라도 기회를 찾게 해야 한다. 윗사람은 아래로 지시하기보다 허리를 숙여 경청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자꾸 말한다. 두 팔을 휘저으며 거들먹거리며 살지 말자. 기어이 낮은 곳을 찾아가는 작은 씨앗의 마음으로 살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돈 많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지갑을 자주 열게 된다면, 주먹이 센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일이 많게 된다면, 내가 잘되는 것보다 남이 잘되는 일을 더 기뻐하게 된다면, 내가 웃고 있을 때 어디선가 울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평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2월 저녁에는 평화를 생각하자. 다급하게 달려온 시간의 지퍼를 잠그고 평화의 마음으로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