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한글 24자와
훈민정음 28자

한글날 태어나,
훈민정음과 운명적으로 만난 자의 독백
성군 세종이 이룩한 업적 중 어떤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훈민정음 창제’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하면, 십중팔구 ‘한글, 24자, 해례본, 표음문자, 나랏말싸미….’ 등의 단어를 나열하다가 이내 자신의 무지함에 조금은 놀라면서 입을 굳게 닫아 버리는 모습일 것이다.
(1절)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 새 세상 밝혀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2절)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넉 자는 /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이 글은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이 작사한 ‘한글날 노래’ 중 1절과 2절 가사다. 이 노랫말처럼 우리는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한글’로 바꿔 배우고, ‘스물여덟 자’를 ‘스물네 자’라고 배우고 있다. 왜 네 글자가 없어졌는지 물어보면 일반적인 대답은 오늘날 사용하지 않아 없어졌다고 한다. 훈민정음은 스물여덟 자로 만들어져 세상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사용하지 않는 오묘한 소리글자 네 개를 빼버린 것이다. 없는 것도 있다고 할 터인데 있던 것을 더 발전시켜 유용하게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세종대왕이 우주 원리와 자연법칙을 바탕으로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을 병마와 싸우며 만든 스물여덟 자를 어떤 권한으로 우리 스스로 버리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세종실록에는 ‘그 글자 수는 스물여덟 자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는데,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이르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세종실록 1443년 12월 30일)
세종대왕은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이라는 뜻의 ‘글’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말을 적는 일정한 체계의 부호’인 ‘글자’를 만든 것이다.
현대의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훈민정음에 대한 정확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에서 정인지(1397~1478)는 다음과 같이 현재는 없어져 버린 네 글자( • ㆁ ㅿ ㆆ )를 포함해 28자라는 새 문자의 창제 동기 및 특징과 장점 등에 관하여 정갈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을 모방하고, 소리로 인하여 음은 칠조에 합하여 삼극의 뜻과 이기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를 청단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은 청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는 율려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 울음 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세종 25년 되던 1443년 섣달 그믐날의 세종실록 기록에는 ‘이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셨다. (중략)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한다.’라고 인류 문자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커다란 획을 그은 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것은 한글 24자가 아니고, 훈민정음 28자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알려보고 싶어서 필자의 천학비재(淺學菲才)를 망각한 채 다음과 같은 <훈민정음 노래>라는 제목의 가사를 써보았다. 가끔 제대로 꽂히거나 중독성이 강한 곡이나 가사를 들었을 경우 나중에도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되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1절)
삼천리 금수강산 터전을 잡고 / 반만년 오랜 역사 이어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등극하신 후 / 무지한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새롭게 만든 문자 훈민정음은 / 수많은 언어 중에 으뜸이라네

(2절)
천지간 음양오행 원리에 기초 / 천문도 이십팔 개 별자리같이
자모음 이십팔 자 글자의 모양 / 볼수록 아름답게 자연을 담은
신비한 창제원리 훈민정음은 /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라네

(3절)
하늘땅 사람의 도() 이치를 담고 / 대우주 기운 품은 하늘의 소리
세상의 온갖 소리 쓸 수 있기에 / 새 세상 밝혀주는 스물여덟 자
위대한 소리글자 훈민정음은 / 세계화 물결 속의 으뜸이라네
이 가사를 쓰고 나니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국립합창단 수석 작곡가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된 ‘창작합창서사시 훈민정음’을 작곡한 오병희 선생이 신문에 보도된 필자의 이 가사에 곡을 붙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10월 6일, 경기아트센터(수원)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제23회 아가페콰이어 정기연주회’서 발표할 예정이다. 훈민정음 창제 578년을 맞이하는 이번 한글날은 운명적으로 한글날 태어난 필자에게 더없이 행복하고 의미있는 날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