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알프스 봉우리로 뻗은 과학기술

스위스 그린델발트

스위스 그린델발트는 융프라우로 향하는 관문이자 산악 액티비티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마을과 봉우리를 잇는 융프라우 철도에는 100년 세월이 깃든 과학기술의 도전이 담겨 있다.

융프라우 역사 바꾼 첨단공법 곤돌라

베르너 오버란트 지방의 산악 마을들은 아이거, 융프라우, 묀히로 대변되는 4,000미터급 봉우리가 드리워져 있다. 아이거의 암벽을 지나 융프라우와 연결되는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3,454미터)이라는 매혹적인 타이틀을 지녔다.
아이거와 묀히의 암벽에 터널을 뚫어 융프라우 봉우리까지 톱니바퀴 철도를 잇는 것은 100년 전만 해도 획기적인 구상이었다. 1896년 시작된 공사는 폭설, 강풍 등의 혹독한 조건을 딛고 16년 만에 완공됐으며, 융프라우요흐는 ‘유럽 최고도의 역’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린델발트에서 융프라우 아래 아이거글레처역을 잇는 첨단공법의 곤돌라가 2020년 겨울 새롭게 들어섰다. ‘아이거 익스프레스’로 불리는 곤돌라는 아이거 북벽을 바라보며 해발 943미터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2,320미터 높이의 아이거글레처역까지 6.5킬로미터를 단 15분 만에 연결한다. 3개의 케이블을 이용한 최첨단 공법이 적용된 이 곤돌라는 시속 100킬로미터의 강풍을 견뎌내도록 제작됐다. 6.5킬로미터 케이블을 지탱하는 지주가 단 7개에 불과한 것은 엄격한 환경기준을 고려한 첨단과학의 산물이다.
그린델발트와 융프라우 일대에는 과학의 흔적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융프라우요흐에는 해발 3,571미터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상 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융프라우 일대의 변화무쌍한 기후와 빙하는 이곳이 알프스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주요 이유였다. 아이거 익스프레스와 산악열차의 운동에너지는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이용 중이며, 융프라우요흐 역에는 태양의 복사열, 수많은 기기와 얼음궁전 방문객의 체온까지 실내 열에너지로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트레킹, 패러글라이딩 등 액티비티 아지트

융프라우 아래 산악마을들은 알프스의 숨은 광경들을 펼쳐낸다. 그린델발트에서는 하룻밤 머물며 아침을 맞아야 제맛이다. 새벽녘 어렴풋이 눈을 뜨면 산등성이로 별과 달이 내려앉은 아이거 봉우리가 마을을 응시하며 ‘하얀 거인’처럼 우뚝 서 있다.
그린델발트는 알프스의 3대 북벽인 아이거를 등지고 들어선 마을이다. 봉우리를 연모했던 산악인들과 각종 액티비티의 모험담은 샬레 지붕을 스치는 바람에 포근하게 뒤엉킨다. 그린델발트 일대는 봄, 가을이면 트레킹, 겨울이면 스키천국으로 변신한다. 다운타운 거리 역시 레포츠 마니아를 위한 용품과 레스토랑으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그린델발트에서 이어지는 휘르스트역(2,168미터)에서는 바흐알프 호수까지 트레킹 코스가 시작된다. 산행길은 키 작은 풀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이곳은 낮은 평균 기온 탓에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그 아득한 풀밭은 알프스의 젖소들에게는 귀한 터전이 됐다.
휘르스트에서는 아찔한 절벽 걷기가 가능하며, 이 일대 최고의 패러글라이딩 출발 포인트도 자리 잡았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패러글라이딩 장면을 촬영했던 알프스 명소가 바로 휘르스트다. 플라이어나 글라이더를 타고 지프라인에 매달려 하강하거나, 바퀴가 세 개 달린 마운틴 카트나 페달 없는 트로티바이크로 그린델발트까지 내리막길을 한적하게 달릴 수 있다. 바이크에 몸을 실으면 알프스의 전원마을과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간다.
그린델발트 마을

휘르스트에서의 패러글라이딩

아이거 북벽 아래 간이역과 산악마을

그린델발트에서 산악열차를 타면 융프라우요흐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인 클라이네샤이텍역으로 연결된다. 해발고도 2,061미터 클라이네샤이텍 정면으로는 아이거의 거친 절벽이, 발아래로는 알프스 산악마을이 펼쳐진다.
아이거 북벽은 한때 등반 금지령이 내려졌을 정도로 험난한 코스였다. 70여 년 전 초등 등정을 위해 사투를 벌였던 청년 등반가들의 눈부신 도전은 영화 ‘노스페이스’로 제작되기도 했다. 클라이네샤이텍 아래 청정마을인 벵엔은 전기 자동차만 오가는 무공해 마을이다. 앙증맞게 생긴 소형 자동차가 다니는 길목에는 거친 소음도, 먼지도 없다. 교회당 너머에는 종소리와 젖소들의 방울 소리가 은은하게 뒤섞인다.
벵엔 마을 깊숙이 들어서면 오래된 영화관이 들어서 있고, 교회당에서는 매년 멘델스존을 기리는 음악제가 열린다. 그 옆 골목에는 마을 단위의 치즈가게와 빵가게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치즈는 젖소를 사육하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 제조해 분배하고 남은 양만 판매한다. 치즈가게 지하 창고에는 얼굴 크기만한 알프스 치즈들이 퀴퀴한 냄새로 추억의 미각을 자극한다.
산악열차

벵엔을 오가는 전기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