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영생불사’ 비밀 지도

찾아 나선 과학자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로병사’의 필연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과학자들은 영생불멸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병 없이 건강하게 나이를 먹는 ‘무병장수’의 방법을 찾고 있다. 생물체가 지닌 유전정보의 집합체인 유전체(게놈)를분석해 생명 현상을 분석해보려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도 이런 이유로 시작했다. 인간 유전체를 구성하는 약 30억 쌍의 DNA 염기서열 전체를 해독해 인간의 생로병사를 결정짓는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겠다는 목표였다.
지난 5월 ‘인간 범(汎) 게놈 분석 연구단’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사람에게서 얻은 유전 물질을 분석해 인간 게놈에 대한 보다 완전한 지도를 작성하고 과학 저널 ‘네이처’에 3편,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1편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사실 인간의 생로병사는 DNA나 게놈, 단백질, 세포들이 단독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이 이런 환원주의적 연구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들 단위의 기능을 명확히 알아야 다른 조직이나 물질과 상호작용을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과학저널 ‘네이처’ 지난 7월 20일자에 ‘참조 세포 지도(referencecell maps)’와 관련한 논문 3편이 실렸다. 동시에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와 분석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소드’에도 각각 논문이 1편씩 실렸다. 또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셀 리포츠’ 등에도 발표됐다. 이번에 발표된 논문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미국 국립보건원(NIH)를 포함해 세계 40여 기관과 400여 명의 과학자들로 모두 ‘인간 생체분자 지도 프로그램(HuBMAP)’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다. 다양한 유형의 세포가 어떻게 배열되고 상호작용하는지에 따라 장기와 조직의 기능을 결정한다. 서로 다른 세포들의 조직과 특성, 조합이 조직의 성장과 기능,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 생체분자 지도 프로그램(HuBMAP)’은 장기와 조직 기능을 결정하는 세포 작동 방식과 세포 간 관계가 개인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인체 전체 세포의 배열을 지도로 작성하기 위해 NIH가 2억 1,500만 달러를 투입해 진행하는 국제 공동 연구 컨소시엄이다. 지금까지 HuBMAP는 단일 세포 수준에서 조직과 기관 내 RNA, 단백질, 대사산물을 포함한 세포 분자 구성 요소의 공간 지도를 그리는 데 필요한 도구 개발에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 연구팀은 그동안 개발한 분석 기법을 활용해 인간의 장, 신장, 모체와 태아의 경계면으로 태반과 모체 세포가 공존하는 공간에 대한 참조 세포 지도를 만드는 데 이번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크게 세 가지 성과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마이클 스나이더 스탠퍼드 의대 유전학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소화부터 면역체계까지 관여하는 복잡한 신체기관인 장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배열, 기능, 상호 관계를 분석해 세포 지도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9명의 장에서 8개의 부분을 분석한 결과 부위별로 세포 구성에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으며 장의 상피 세포에서 새로운 아형(subtype)을 발견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다른 유형의 특정 세포들이 서로 이웃을 형성하고 그중 일부는 면역 반응 매개 라는 특별히 정해진 기능을 수행한다. 이 연구 결과는 장의 기능에 기여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구성의 세포들을 보여준다.
마티아스 크레츨러 미국 미시간 앤아버대 의대 교수가 주도한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남녀의 신장 45개와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신장 48개를 비교·분석했다. 특히 신장 세포 지도 구축을 위해 건강한 신장, 급성 질환으로 손상된 신장, 만성질환 신장 등에서 채취한 40만 개 이상의 세포와 핵을 분석해 주요 세포 유형에 대한 단일 세포 및 공간 고해상도 지도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손상된 신장 세포는 보통 복구를 위해 면역 세포와 섬유아세포를 유도하는 신호를 방출하고 복구 후 정상세포로 돌아가지만, 급성 손상된 경우는 28개 유형의 세포에 변화가 발생해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신장의 여러 부위에서 51종의 세포 유형과 네트워크 형태를 규명했다. 이를 통해 유형이 바뀐 신장 세포는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복구 상태에 머물며 더 많은 면역 세포와 섬유아세포를 유도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염증과 섬유화를 일으켜 질병은 회복할 수 없는 상태까지 진행하며 신장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클 안젤로 스탠포드대 병리학 교수가 주도한 연구팀은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모체-태아 경계면에서 66개의 샘플을 채취해 약 50만 개의 세포와 558개의 혈관을 분석해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 착상돼 성장하는 임신 전반기 산모의 태반 지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번 태반 지도를 통해 임신 6~20주에 걸쳐 태반과 엄마의 면역 세포가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면서 모체와 태아 세포가 공존할 수 있게 돕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태반의 태아 쪽에서 만들어져 혈관 리모델링 신호를 보내는 영양막 세포와 엄마의 면역계가 복잡하고 정교하게 신호를 주고 받으면서 모체가 낯선 태아 세포를 받아들이도록 조율한다는 설명이다.
과학계는 이번 연구 결과들에 대해 “질병과 관련된 세포 상태의 공간적 위치를 정의함으로써 질병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더 높이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건강과 질병에서 세포 조직과 기능이 구체적으로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표본을 대상으로 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