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 치앙마이는 란나 타이 왕국의 옛 수도다. 사원과 불탑이 곳곳에 들어선 고도는 ‘북방의 장미’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QR코드 결제 등 핀테크 문화의 확산은 오래된 도시의 단상을 이채롭게 바꿔 놓았다.
길거리 가판대까지 스며든 핀테크
태국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의 분위기는 수도 방콕과 다르다. 치앙마이의 숙소에 묵으면 사원에서 들려오는 불경 소리에 잠을 깬다. 낮은 산자락에 들어선 도시는 골목 곳곳에 새들이 울고 불탑이 어우러진 고요한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힐링의 도시 치앙마이에서 이색적인 풍경은 상점 곳곳에 나붙은 QR코드다. 거리의 꼬치구이 가게나 과일 노점상에도 QR코드가 버젓이 걸려 있다. 일반 상점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일은 드물다. 카드 단말기가 없는 곳이 다반사다.
대부분의 결제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QR코드로 이뤄진다. 외국인들도 ‘스캔 카’, ‘QR 플리스’ 등 짧은 말을 건네면 10바트(400원) 짜리 꼬치구이 값을 현지 환전 없이 쉽게 지불할 수 있다. 핀테크 등 정보통신신기술(ICT)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빠른 확산은 현금 지불에서 카드를 건너뛰어 QR결제로 직행을 가능하게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문화 역시 한몫을 했다. QR코드를 찍어 결제된 금액은 곧바로 상점 주인의 계좌에 이체되며 즉석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북적이는 시장이나 길거리 음식을 파는 허름한 가판대에서도 QR을 스캔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노점상 외에 공유 택시로 인기 높은 ‘볼트’ 등을 이용할 때도 탑승 후 QR만 찍으면 된다. 세 바퀴 택시인 ‘툭툭’을 타기 전 흥정하는 모습은 추억거리로 남았다. 음식, 슈퍼 주문과 결제도 스마트폰과 QR로 손쉽게 이뤄진다.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채 모터사이클을 타고 배달에 나서는 라이더들은 치앙마이의 친숙한 모습이다.
치앙마이 등 도시들의 이커머스 성장과 핀테크의 발달은 현금 사회에서 바로 모바일 QR결제로 넘어가는 마중물이 됐다. 노선버스나 버젓한 택시조차 없던 고산도시에서 낯선 진풍경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사원과 아침 시장, 옛 골목의 올드시티
치앙마이의 올드시티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소담스런 규모다. 사원과 골목 사이로 돌길이 이어지는 네모 형태의 구도심은 성곽과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올드시티의 골목길에 묵으면 온전히 치앙마이의 온기가 전해진다. ‘쁘라뚜’로 불리는 성채의 문들은 시간여행의 관문이다. 동쪽 쁘라뚜 타패 지역은 현지 주민과 외지인들이 뒤엉키는 번화가다. 남쪽 쁘라뚜 치앙마이에는 새벽이면 아침 시장이 들어선다. 주민들은 이곳 아침 시장에서 찬거리를 마련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주말이면 나이트 마켓이 들어서 불야성을 이루는 이방인의 공간이 아침만큼은 온전히 주민들을 위해 넉넉한 어깨를 내어준다.
올드시티에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사원들이 골목마다 숨어 있다. 사원들은 장엄한 것과 무너진 것들이 조화를 이룬다. 부처 역시 생채기 난 모습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있다.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왓 체디루앙 사원은 본당 뒤편의 42m 벽돌 불탑이 인상적이다. 구시가 서쪽의 왓 프라씽 사원은 북부지방 최고의 격식을 자랑하며 외벽의 조각상들은 란나 타이 왕국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가장 오래된 왓 치앙만 사원은 코끼리상으로 둘러싸인 란나 왕국 초기의 황금색 불탑이 볼만하다.
올드시티의 농부 악핫 공원에서는 요가, 태극권 등의 무료 강좌가 아침마다 열린다. 중년의 남성들이 곁에서 세팍타크로를 즐기는 평화로운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다.
치앙마이 커피와 몽크트레일
성곽 너머 외곽에서 만나는 치앙마이의 모습은 한결 평화롭다. 사원들은 이방인들로 북적이지 않고, 주민들은 아침인사를 건네는데 인색하지 않다. 치앙마이 서쪽은 치앙마이 대학을 중심으로 앙증맞은 카페들이 있다. 창고를 개조한 빈티지 카페를 방문해 치앙마이 커피를 탐하는 행위는 이곳에 오래 머무르는 여행자들의 주된 일과다. 고산지대에서 나는 치앙마이 커피는 수준급 반열에 올라 있다.
치앙마이 서남쪽 반캉왓은 예술인의 마을이다. 젊은 공예가들이 만든 공예품을 만나고, 만들기 수업도 받을 수 있다. 공방과 어우러진 식당과 찻집들은 운치를 더한다. 반캉왓 마을을 에워싼 산자락이 치앙마이의 든든한 배경인 도이수텝 산이다.
도이수텝 산길을 따라 사원 사이를 걷는 몽크트레일은 사색과 힐링으로 채워진다. 예전 승려들은 이 길을 걸어 오르며 번뇌를 다스리고 수양을 쌓았다. 트레일 중간에 만나는 왓 파랏 사원은 숲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채 도심 사원과는 다른 풍취를 전한다. 나이 지긋한 노승의 평온한 설교를 불탑 아래서 들을 수 있다. 도이수텝 정상부이자 인기 관광지인 왓 프라탓까지 숲길을 걸어 오르면 치앙마이 시내가 아득하게 내려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