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리포트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 원자력의 역할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진흥전략본부 임채영 본부장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특히 서구 국가들에서는 공업화, 도시화, 기술 진보가 맞물려 에너지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다. 선진국들의 에너지 소비는 둔화되고 있지만 중국, 인도 등 신흥 개발국 중심으로 에너지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어 이러한 에너지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소비 증가는 곧바로 화석 연료의 사용 증가로 이어졌고,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이 주된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화석 에너지 소비의 증가는 직접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증가를 초래하였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는 지구의 온난화를 가속화시키며, 이로 인해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온도 상승, 극한 기후 현상의 빈번, 해수면 상승 등 다양한 환경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이를 기후위기라 통칭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 빈국으로,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에너지 수입에 지출하는 비용이 총수입의 25%에 달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국제 정세의 변동에 따라 에너지 가격의 불안정성이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경제는 제조업이 중심이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이 총생산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이 약 28%로 그 비중이 각각 17%, 11%인 EU와 미국과 비교하여 매우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에너지 단가의 변동은 제조업의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에너지원을 자연에서 얻는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안보 확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이 협소하여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설치에 한계가 있다. 2021년 기준으로 이미 국토면적당 태양광 발전량은 네덜란드,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에 이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풍력 자원은 유럽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불리한 형편이다. 특히, 육상 풍력의 경우 지리적인 제약과 주민 반대가 심하여 확장이 쉽지 않으며, 해상 풍력 역시 바람 자원의 한계로 높은 비용을 낮추기가 쉽지 않다. 해상풍력이 발달한 유럽의 경우 초속 9m의 바람이 부는 반면, 우리나라는 평균 7m 수준으로 같은 설비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이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위기 대응에서 원자력의 장점
이러한 여건을 고려할 때, 원자력은 한국에서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요약하면 원자력은 온실가스 배출이 적고, 대규모 에너지를 경제적이고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가장 경제적인 발전원이다. 2022년도 기준, 원전 정산단가는 kWh당 53 원인 반면 재생에너지는 200 원을 상회한다. 앞으로 기술개발에 따라 재생에너지의 원가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여건의 한계를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의 발전원가가 원전보다 저렴해지는 시기는 낙관할 수 없다.
또한 우라늄 자원은 세계 전역에 고르게 매장되어 있어 중동에 집중되어 있는 석유와 달리 구조적으로 공급 제한이나 가격 급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지만 우라늄 공급 인프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해 일시적으로 우라늄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러나 우라늄 공급 부족이 장기간 발생할 경우 다양한 국가들이 자체적인 우라늄 공급 역량을 구축하는 시도를 정당화할 수 있다. 이는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시설의 확산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핵무기 보유국의 입장에서는 공급 보장을 유지해야 하는 전략적 필요성이 상존한다. 이러한 국제정치적인 구도를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우라늄 자원의 공급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우라늄의 생산과 원자력 발전, 최종 처분에 이르는 전체 발전주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화석 에너지와 비교하여 1% 정도로 풍력이나 태양광과 유사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산업 규모는 25조 원 규모로 GDP의 1.2%를 차지한다. 이러한 직접적인 부가가치에 더해서 원전 산업이 존재함으로써 유발하는 연관산업의 효과와 전기요금 안정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효과, 온실가스 감축으로 기여하는 효과를 추가한다면 직접적인 산업매출 이상의 규모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효과에 더해 앞으로 원자력이 수출 산업으로 발전한다면 국가 성장동력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자력 기술은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분야로서, 우리나라가 이미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산업이다. 원자력발전소의 설계, 건설, 운영, 폐기물 처리 기술 등을 해외에 수출함으로써, 새로운 수출 동력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 세계 원자력 산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수출상품으로 개발한다면 명실상부한 국가성장동력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1.5℃ 시나리오에서 요구되는 원자력 설비용량 시나리오
해당 그림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제어하기 위해서 2050년까지 필요한 원자력 설비용량을 보여준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필요한 원전 설치용량은 1,160 GWe로 현재 설치된 용량의 3배 가까운 규모이다. 즉, 기존의 원전을 계속운전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2배 규모의 신규원전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규원전은 기존의 대형원전뿐 아니라 새롭게 개발되는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조합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대형원전뿐만 아니라 SMR 수출시장 개척에도 힘써야 한다. 이를 통해 원자력산업을 수출산업으로 확장시켜서 산업규모 100조 원, 산업인력 10만 명에 이르는 국가성장동력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제한된 자원과 국토 면적, 그리고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원 선택은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서 매우 중요하다. 태양광과 풍력과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도 중요하지만, 현재 기술과 경제적 조건을 고려할 때 원자력은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자력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수출산업화 함으로써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