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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병원에서 자세한 검진이 필요할 때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양전자단층촬영(PET) 등과 같은 첨단 의료장비들을 접하게 된다. 이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몸속의 질환을 영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고, 해당 장치를 개발한 연구자들에게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생리의학상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첨단 영상 장비에는 어떤 원리가 숨겨졌기에 노벨상에 이를 수 있었는지 살펴보자.
컴퓨터단층촬영(Computed Tomography, CT)은 무엇인가요?
이 장치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X선(X-ray)에 대해 알아야 한다. CT는 쉽게 말해 X선을 이용해 인체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X선은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이 실험 중에 우연히 발견했다. 뢴트겐은 X선으로 아내의 손을 찍어 피부에 가려진 뼈의 형상을 파악했다. 이 발견으로 그는 1901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고, 의료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골절, 결핵, 폐렴을 진단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군인들의 몸속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기도 수월했다. 다만, 한 방향으로 평면적인 영상만 찍을 수 있어 겹쳐있는 부분들은 구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1960년대 중반 무렵,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매클라우드 코맥은 밀도가 서로 다른 조직의 X선 영상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CT 관련 수학적·물리학적 기초를 세워 영상이 구성되는 원리를 발표했다. 영국의 전기공학자 고드프리 하운스필드는 그 원리를 바탕으로 CT 장치를 최초로 개발했다. 환자가 CT 영상기기 안에 들어가면, X선 발생장치가 사람 몸 주위로 360도 회전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속의 단면을 촬영한다. 각각의 단면 영상을 합치면 환자의 전신 영상이 완성되는데, 이로써 몸속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명의 과학자도 CT 개발의 업적을 인정받아 197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 MRI)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CT는 방사선의 일종인 X선을 이용하는 반면, MRI은 자석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을 사용한다. 원자핵에 자기장을 가하고 고주파를 쪼였을 때 발생하는 물리적 변화에서 착안한 방법이다. MRI는 우리 몸속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물 분자 중 수소 원자핵을 이용한다. 평소 원자핵들은 무질서하게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MRI의 자석으로 강한 자기장을 가하면 원자핵들 모두 같은 방향으로 정렬된다. 나침반 여러 개가 모여 있는 곳에 자석을 가까이 대면, 나침반 바늘 모두 한 방향으로 배열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후 신체에 고주파를 쪼인다. 몸속 원자핵들이 고주파를 흡수하며 발생시키는 신호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다. 조직 내 세포가 정상인지 아닌지에 따라 신호 변화에 차이가 있다. 정리하면, MRI는 자기장과 고주파로 발생한 신호들을 모아 인체의 단면 및 3차원 영상으로 재구성해 질병을 진단하는 검사다. MRI의 원리를 찾아낸 펠릭스 블로흐와 에드워드 퍼셀은 195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MRI 개발에 성공한 폴 로터버와 피터 맨스필드는 2003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거머쥐었다.
양전자방출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PET은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영상법이다. 양전자는 쉽게 말해 전자와 반대되는 성질이 갖는 기본 입자 중 하나다. 양전자는 전자와 결합하면 소멸되면서 180도 방향으로 방사선을 내뿜는데, 이 현상을 감지해 3차원으로 영상화하면, 우리 몸속 질병을 찾아낼 수 있다.
PET을 이용해 암을 찾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암이 주 영양분으로 삼는 포도당에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 약물을 만든다. 환자에게 투여한 약물은 결국 몸속 암이 섭취하게 된다. 이후 환자를 원형 검출기로 스캔하면, 몸속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을 3차원으로 영상화할 수 있다. 암의 위치와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암으로의 전이 여부, 치매와 같은 뇌 질환, 심장 활동의 정상 유무도 알 수 있다.
포도당 대신 다른 물질을 이용한다면, 해당 물질 특성에 따라 인체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밝혀낼 수 있다. PET 개발에 대한 노벨상 수상자는 아직 없다. 흔히 보는 원형 PET 영상장치를 개발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우리나라 조장희 박사가 1970년대에 처음 개발했다. 이는 현재 세계적으로 쓰이는 PET 장비의 실체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CT나 MRI의 사례를 미루어 봤을 때, 노벨상을 받을 공로로 인정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앞서 소개한 세 가지 영상장치 중에서 무엇이 가장 뛰어난가요?
각각 다른 원리를 지니므로 우위를 정할 수 없다. X선을 이용한 CT는 조직의 투과 차이가 큰 뼈의 미세 골절 및 폐, 간, 신장 등 내부장기 촬영에 효과적이다. 촬영 시간이 짧아 응급환자나 신속한 진단이 필요할 때 적절하다. 하지만 X선에 의해 환자가 방사선에 노출되고 혈관내부를 확인하기가 어려워 혈관막힘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MRI는 CT에 비해 근육과 인대, 뇌 신경계, 종양 등의 부드러운 조직 촬영에 최적화돼있다. 특히 급성 뇌경색 등 신경계를 촬영할 때 그 성능이 우수하다. 하지만 촬영에 오랜 시간이 소요돼 응급환자에게는 적용이 힘들고 환자가 인공 치아, 척추 보형물 등의 금속 물질 또는 심장박동기를 달고 있다면 진단에 방해가 된다. PET은 종양, 알츠하이머병(치매), 심장 질환 등을 진단할 때 쓰인다. 그러나 방사선이 나오는 위치만 알기 때문에 MRI, CT처럼 정확한 해부학적 정보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세 가지 영상장치들을 융합한 PET-CT, PET-MR을 개발함으로써 서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영상 장비를 만들 수 있나요?
국내기술로도 CT, MRI, PET 등의 첨단 의료장비를 만들 수 있다. 처음 영상 장비의 원리는 물리학에서 시작하나, 장치를 실제로 설계·제작하려면 전기, 전자, 컴퓨터 등의 공학 기술이 필요하다. 또 활용도를 극대화하려면 장비를 사용하는 화학, 생물, 의학 등의 분야 간 융합이 관건이다. 국내 대학교, 정부출연연구기관, 기업, 병원에서는 수십 년간의 협업 연구를 통해 영상장치 각각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이제는 외국에도 수출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MRI 핵심부품인 초정밀 자석기술, 뇌영상을 단시간 내에 정량화하는 PET 영상기술 등을 확립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CT의 방사선량을 줄일 수 있는 방사선 센서와 암을 진단하는 PET용 동위원소 개발기술을 개발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