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포커스

SMR, 세계 시장 주도할 기회 놓치지 말아야

백원필한국원자력학회장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에 중요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개발사업의 예산 확보가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년도 예산을 둘러싼 여야 대치의 결과다. 그런데 이 사업은 지난 정부에서도 필요성을 인정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개 발 방향을 정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공동으로 사업을 기획하여 예비타당성조사를 추진했다. 또한 여야 국회의원들이 적극 참여한 ‘SMR 국회포럼’에서 정책적·기술적 고려 사항들을 공동으로 논의해왔다. 예비타당성조사는 현 정부 출범 직후까지 진행되어 4,000억 원 규모로 통과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 및 산업계뿐만 아니라 범국가적으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소형모듈원자로(SMR)는 다양한 장점을 지닌 저탄소 에너지 공급 장치다. 첫째, 여러 기의 소형 원자로를 모듈식으로 조합하여 다양한 규모의 전력 수요나 열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둘째, 유연한 출력 조절 기능을 갖추어 간헐성과 변동성이 극심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시스템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셋째, 높은 안전성으로 제철소, 화학공단,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 등 에너지 수요지에 인접해 건설함으로써 전력과 열 또는 수소를 공급할 수 있다. 넷째, 연료 교환 없이 장기간 운전이 가능하여 해상, 우주 및 오지 에너지원으로서 고유한 장점을 지닌다. 최근 들어 다수의 국내 대기업이 외국의 SMR 개발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그 가능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SMR 개발은 세계적으로 매우 활발하며 이제 막 시장이 열리려는 시점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022년 보고서에는 80여 종의 SMR이 소개되어 있다. 미국(20종), 러시아(17종), 중국(10종)이 SMR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며, 캐나다 (5종), 한국(4종), 영국(4종)에서도 활발하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이미 SMR이 가동 중이고 캐나다, 미국, 영국 등도 구체적인 건설 계획을 갖고 있다. 2030년대에는 10여 종의 SMR이 세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부터 전기출력 100MW(메가와트)급 SMART 원자로를 개발하여 SMR로서는 세계 최초로 2012년 규제기관 인증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1억 달러를 투자받아 사우디아라비아 내 건설을 목표로 설계 개량과 공동 설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현재 표준설계인가 심사 중인 개량형 SMART의 사우디 건설은 우리나라의 탈원전 정책과 사우디의 대형 원전 우선 정책으로 어려워졌으나 캐나다 오일샌드 시설을 비롯하여 수출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SMART 개발 경험과 대형 원전 개발· 건설·운영 경험을 결합하면 우리나라의 i-SMR은 2030년대 세계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SMR이 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공동으로 개념설계를 수행해왔고 내년부 터 2028년까지 6년간 상세설계와 검증을 완료하고 규제기관 인증까지 받을 계획이다. 개발 착수 시점을 늦출 여유가 없고, 2030년대 10년만 하더라도 150조 원 규모로 예상되는 세계 SMR 시장을 고려할 때 4,000억 원의 개발 비용은 결코 과다하지 않다. 유연한 출력 조절 능력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에너지 저장장치 용량을 크게 줄임으로써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기여한다. 또한, 대규모 에너지 수요지 인근에 건설하면 국가적인 송전망 증설 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i-SMR은 고립된 에너지 섬인 우리나라에서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 및 산업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아무쪼록 여야가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를 생각하여 개발 예산 확보에 인색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아가 외국의 SMR 개발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민간 대기업들이 국내 사업에서도 보다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의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추진 중인 소형모듈원자로(SMR) 조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