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포커스

디지털 전환, 유연함에서 출발하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천연가스 공급이 부족해지고, 국제유가도 크게 올랐다. 장기적으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두고 있다 보니, 그야말로 저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현재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 단가는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 성장할 신재생에너지와 견주었을 때도 경쟁력을 갖추려면, 안전성과 경제성 모두 개선되어야 한다.

이에 영국에서는 신규 원전의 건설단가 및 전력 판매 단가를 30% 감소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 역시 전력 생산단가의 80%에 해당하는 운영 및 유지보수 비용을 10분의 1 이내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안전성을 강화하면서도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두 나라가 공통적으로 선택한 방법은 바로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트윈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오늘날 산업계 전반에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그간의 행보로 미뤄봤을 때 원자력 분야에서의 신기술 도입은 꽤나 특별한 결정처럼 여겨진다. 방사성물질 누출 방지 등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특성상, 오랜 기간 검증된 기술만을 사용하는 경향이 컸기 때문이다.

최근 디지털 전환을 적극 수행 중인 원자력 세부 분야를 꼽자면, 우주발사체가 있다. 미국항공우주국 NASA는 우주발사체의 경제성을 높이고자 민간회사인 스페이스X와 협업했다. 수십 년간 사용하던 낡은 시스템을 버리고,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기 위함이었다. 우선, 우주방사선에 의한 컴퓨터 오동작을 예방하고자 다수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를 병렬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기기에 핵심부품으로 자리 잡은 반도체를 고가의 내(耐)방사선 재료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소프트웨어 개발 시스템에 C언어와 리눅스(Linux) 운영체제를 일괄 도입했다. 여러 개발자가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체계로 변경함으로써 로켓 재사용과 같은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우주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원자력 전 분야에 걸쳐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려면 크게 세 가지 ‘유연함’이 요구된다. 먼저, 조직체계의 유연함이다. 부서 간 담벼락이 처져 있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혁신을 꾀하기 어렵다. 다양한 기술과 관점으로 기본 부서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국책연구원을 비롯해 여러 대기업의 인공지능 조직은 협업부서와 협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된다. 마치 중심축으로 여러 바퀴살이 모인 모양과 닮아 일명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구조라 불린다. 부서 간 영역을 선 긋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발전할 수 있도록 유연한 조직과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또한, 기존의 크고 무거운 부서보다 유연하고 소규모 팀 중심의 조직을 통해 빠른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구성원 인식의 유연함이다. 과거에는 프로젝트가 개인의 전문성에 의존했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급변하는 기술을 쉽게 수용하고 타인과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조직은 유연하고 협력에 적합한 인재를 영입해, 새로운 것을 흡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리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말고, 데이터 기반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조직문화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자발적이면서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구축 단계에서부터 전처리, 모델 개발 및 최적화, 마지막 서비스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까지 인공지능 기반의 조직문화로 전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플랫폼상의 유연함이다. 모든 지적자산을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디지털 형태로 변환해, 중앙에서 효과적으로 축적·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판단 원리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XAI(eXplainable AI)’이상탐지 등 원자력에 핵심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모듈화 및 머신러닝 형태로 자동화할 수 있는 ‘MLOps(Machine Learning Operations)’ 시스템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인용 클라우드 ‘PaaS(Platform as a Service)’ 시스템 등이 있다. 명료한 플랫폼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모든 직원이 손쉽게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원자력의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기술만 도입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식과 사고가 함께 바뀌어야 성공할 수 있다. 빠른 시일 내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이 이뤄져,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