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과학읽기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
문화체육부장

아스피린이 암 전이까지 막아준다고?
아스피린의 이모저모

옛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시골 장터에 “애들은 가라”라고 외치면서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중국 진시황부터 전 세계 많은 권력자는
단 한 알만으로 세상의 모든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해 주는 만병통치약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만병통치약의 언저리까지 간 약이 있기는 하다. 바로 ‘아스피린’이다.

아스피린은 128년 전인 1897년 독일의 제약사 바이엘이 살리실산을 이용해 만든 세계 최초의 합성의약품이다. 살리실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할 수 있는 성분이다. 버드나무 껍질이 통증을 완화하고 열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를 의학적으로 사용한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길다. 수양, 유서, 유화, 유지, 유엽 등으로 불리는 버드나무 껍질의 효능은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자세히 묘사돼 있다. “맛이 쓰고, 성질이 차며 독이 없다. 풍을 없애고, 부은 것을 내리며, 소변을 잘 나가게 하고, 아픔을 줄이는 데 효능이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어떤 성분이 효과가 있는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되던 중, 바이엘사가 실험실에서 합성한 것이다. 아스피린이 처음 등장한 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기존에 알려져 있던 해열, 소염 진통 효과만 강조돼 감기·몸살 치료에 주로 쓰여왔다. 그렇지만, 이후 피를 묽게 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춰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근까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효과가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1. 아스피린의 여러 효과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암 전이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Pixabay
2. 아스피린(아세틸 살리실산)의 분자구조 / ⓒWikipedia

이런 가운데, 영국 케임브리지대 의과대학, 바브라함 연구소,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 웰컴 생어 연구소, 이탈리아 키에티-페스카라 단눈치오대 고등기술연구센터(CAST), IRCCS 후마니타스 연구병원, 대만 국립대 의과대학, 프랑스 릴대 병원 공동 연구팀은 아스피린이 면역 체계를 자극해 활성화함으로써 일부 암의 전이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과학 저널 ‘네이처’ 3월 6일 자에 발표했다.

암세포가 처음 발생한 부위(원발 부위)에서 다른 기관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전이라고 한다. 암 전이는 전 세계적으로 암 관련 사망의 90 %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체의 면역 체계는 암 전이와 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암 치료법에서 주목받고 있는 면역 요법도 인체의 면역 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와 싸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암세포라는 놈이 인체 면역 감시를 회피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가 혈액 내 혈소판이 ‘트롬복산 A2’(TXA2)를 생성해 전이 부위에서 면역세포인 T세포 활동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이런 면역 회피와 억제는 인체가 전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공격해 제거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이에 연구팀은 생쥐에게 유방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대장암을 포함한 다양한 암을 일으킨 다음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아스피린을 복용시키고, 다른 집단은 아스피린을 투여하지 않은 채로 관찰했다.

연구 결과, 아스피린을 투여한 생쥐들은 폐나 간과 같은 다른 기관으로 암 전이 비율이 낮다는 것이 발견됐다. 아스피린이 혈소판에서 염증 관련 효소인 ‘사이클로옥시게나제-1’을 억제하고, TXA2 생성을 줄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TXA2의 감소는 T세포를 해방해 전이성 암세포와 싸우는 능력을 강화한다는 설명이다.

아스피린이 암의 전이와 진행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생쥐실험에서 아스피린이 대장암 진행과 재발을 차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Shutterstock

이번 연구를 이끈 라훌 로이추두리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암 면역학)는 “이번 연구 결과는 아스피린이 생쥐의 자연 면역 반응을 강화함으로써, 암 전이를 예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아스피린 처방은 비교적 저렴하고 간단해 다른 면역 요법과 결합하면 암 전이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진은 65세 이상 남녀 14만 6,152명을 대상으로 10년 넘는 장기 추적조사 연구를 실시한 결과 저용량 아스피린을 일주일에 3번 이상 복용하는 사람은 전혀 복용하지 않는 사람보다 암 사망 위험은 15 %, 그 밖의 사망 위험들도 19 % 낮춘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고, 미국 시티오브호프 연구소 연구팀은 생쥐 실험에서 아스피린이 대장암의 진행과 재발을 차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태아에 미칠 영향 때문에 웬만한 감기나 질병에도 약 먹는 것을 피하는 산모들에게도 아스피린은 출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20년 미국 델라웨어 크리스티아나 케어 헬스시스템, 미국 국립아동보건·인간발달연구소(NICHD)의 국제여성아동보건연구네트워크 연구팀은 임신 6주~36주의 임산부가 매일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이 조기출산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세계적인 의학저널 ‘랜싯’에 발표했다.

조산은 임신기간을 기준으로 20주부터 36주 6일까지의 분만을 이야기하며 전체 분만의 6~15 %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매년 약 5만 명의 조산아가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생아 사망의 80 % 정도가 조산 때문이며 조산아에게서는 각종 신경계 발달장애나 호흡기 관련 합병증 등이 쉽게 나타날 수 있어서 의학계에서도 조산율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처음 임신한 1만 1,976명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아스피린의 효과를 실시한 결과, 아스피린을 복용한 임산부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조산 가능성이 평균 11 % 정도 낮은 것으로 확인했다. 또 생후 7일 이내에 사망하는 신생아의 비율도 아스피린을 복용한 그룹은 1,000명당 45.7명, 그렇지 않은 그룹은 1,000명당 53.6명으로 나타났다.

여러 질병에 대해 아스피린의 효과가 밝혀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스피린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건강한 사람이 아스피린을 장기간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위장출혈이나 위염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복용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미국 심장학회와 심장병학회는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 대상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심장병이나 뇌졸중 발병 위험이 큰 사람으로 제한 권고했으며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도 아스피린 복용은 개인 건강 상태를 고려해 의사와 상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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