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서영진 여행칼럼니스트
예술이 과학과 만나면 어떤 풍광이 펼쳐질까.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는 ‘과학과 예술의 접목’이라는 독특한 시도를 안착시킨 도시다.
발렌시아 CAC(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지구는
‘City of Arts and Sciences(예술과 과학의 도시)’라는 의미를 지녔다.
현대 건축예술과 과학의 앙상블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스페인을 상징하는 새로운 명소가 됐다.
발렌시아는 지중해에 접한 스페인 ‘제3의 도시’다. 구도심 거리에는 키가 작은 오렌지 나무가 줄지어 있고, 지중해의 훈풍이 불어오는 곳이다. 스페인 전통 해산물 음식인 파에야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도시기도 하다.
발렌시아가 도심 풍광만으로 바르셀로나, 세비야, 마드리드 등 유서 깊은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CAC 지구의 태동 이후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슬로건 아래 1980년 후반 시작된 프로젝트는 수십 년에 걸쳐 독특한 건축물들이 완성되며 윤곽을 갖췄다. 과학관, 천문관, 수족관, 식물원 등이 현대 건축예술에 담겼고, 작품을 감상하듯 과학 세계를 탐미하는 꿈같은 일상이 가능해졌다.
CAC 지구의 조성에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와 펠릭스 칸델라가 나섰다. 인간의 눈꺼풀을 닮은 천문관이자 영화관, 혁신적인 체험형 과학센터인 과학박물관, 수중도시를 연상케 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수족관 등은 2 km 축을 따라 건축가의 숨결을 간직한 채 들어서 있다.
1957년 대홍수 이후 발렌시아 투리아 강의 강줄기가 바뀌면서 말라버린 강바닥 끝자락 위에서 CAC 프로젝트가 실현됐다.
CAC 지구의 건축물들은 상상력과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우주선, 로봇 머리, 물고기 뼈 등 외관이 독특하다. 물 위에 투영된 흰 건물들은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지며 신비감을 더한다.
천문관이자 디지털 영화관인 ‘레미스페릭’은 CAC 지구에서 1998년 첫 번째로 완공됐으며 ‘지혜의 눈’이라는 별칭을 지녔다. 100 m 넘는 돔 부분이 눈꺼풀처럼 열리도록 설계됐으며 지름 24 m인 오목 스크린과 천체를 감상하는 공간을 갖췄다.
펠리페 왕자 과학박물관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체험형 과학센터로 4,000개가 넘는 유리창이 뒤덮고 있다. 120개 주제, 2,500여 종의 전시물은 만지고, 느끼고, 환호하는 체감형 전시물이다. 우주왕복선 시뮬레이터, 3D 매트릭스 촬영장, 염색체의 숲 등이 인기 있는 코너다.
기하학적 지붕의 ‘오세아노그라픽’은 이곳 건축물 중 펠릭스 칸델라가 주도한 수족관이다. 유럽에서 가장 긴 수중 터널을 지녔으며 500여 종의 수중생물을 만날 수 있다. 10.5 m 깊이의 돌고래 관이 흥미진진하다.
이밖에 주차장 위에 건설된 ‘움브라클레’는 지중해 식물원과 현대 조각공원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여행객들의 포토스팟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투구 모양인 소피아 여왕의 오페라하우스, 컨벤션센터인 아고라 등은 완공 이후 예술 공연 등이 펼쳐지며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고래의 뼈를 형상화한 펠리페 왕자 과학박물관 / ⓒShutterstock
미래도시를 벗어나 발렌시아의 구도심에 들어서면 시간여행을 한 듯 과거로 회귀한다. 엘 카르멘 지역은 미로 같은 골목이 남아있고, 레이나 광장, 세라노 타워에서도 중세의 온기가 전해진다. 발렌시아는 15세기 실크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실크 거래소와 중앙시장 등에서 옛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도자기 생산지로도 유명해 골목을 거닐며 대문과 담장에서 고색창연한 자기 타일과 조우할 수도 있다.
중세도시의 흔적과 지중해의 훈풍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 발렌시아는 축제와 축구로 들썩이는 역동적인 도시다. 매년 봄에는 오래된 인형을 태우는 불의 축제 ‘라스 파야스’의 막이 오르며 여름이면 CAC 지구의 음악 예술 축제인 ‘페스티벌 데 라스 아르테스’가 펼쳐진다.
발렌시아 인근 도시인 부뇰은 토마토 축제인 ‘라 토마티나’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소도시다. 축구장인 메스타야 경기장은 발렌시아 시민들이 추앙하고 열광하는 뜨거운 공간이다. 발렌시아 CF의 홈구장이며 발렌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국가대표 공격수 이강인이 이 발렌시아 CF 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라스 파야스 시기가 되면 거대한 인형이 발렌시아 곳곳에 설치된다. / ⓒShutterstock
발렌시아 CF의 홈구장인 메스타야 경기장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