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누구든 한평생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가족이나 지인의 상실이다. 세상에 혼자 태어나서 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상실한다는 것은 참기 힘든 슬픔이고 고통이다. 그래서 상실을 피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게 우리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배경으로 상실을 견디는 과학적 방법을 묘사하는 영화가 <원더랜드>(2024)다. 감독은 <만추>(2011)로 탄탄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김태용 감독이며, 김 감독의 아내 탕웨이 그리고 박보검, 수지, 최우식, 정유미, 공유까지 호화로운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왔던 SF 로맨스 영화다.
영화는 크게 2가지 에피소드로 전개된다. 먼저 딸과 엄마를 두고 먼저 죽은 바이리(탕웨이 분)는 고고학자가 되어 여행을 떠난 것으로 설정되고 바이리의 딸은 엄마가 출장을 갔다고 믿는다. 하지만 바이리의 딸은 화상통화에 만족하지 않고, 또 딸의 재현을 받아들일 수 없던 바이리의 엄마는 각각 갈등하게 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정인(수지 분)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태주(박보검 분)를 그리워하던 나머지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하고 태주를 우주정거장으로 보내 잘 이용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태주가 깨어난다. 정인은 가상현실 속 태주와 현실의 태주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다. 이 두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역할로 원더랜드 서비스 운영자인 해리(정유미 분)와 현수(최우식 분)가 등장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망자의 기억을 옮기는 것, 복제체의 자아 인식 그리고 메타버스 속의 존재가 자의식을 느끼는 것 등 과학적으로 생각해 볼 만한 소재를 다룬다. 이들 모두 이미 소설과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것들이다. 또한 우주인 태주가 담당하는 인공지능 비서 같은 서비스는 이미 우리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왼쪽) 정인은 원더랜드 서비스를 통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태주를 우주비행사로 재현시킨다.
(오른쪽) 바이리의 딸과 엄마는 원더랜드 서비스로 죽은 바이리를 재현하지만, 완전한 만족을 주진 못한다.
함께 한다는 것은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뇌 속 뉴런 간 전기적 작용으로 만들어지고 불러내어진다. 영화 <트랜센던스>(2014)에서 죽음을 앞둔 주인공은 자신의 뇌를 슈퍼컴퓨터 ‘PINN’에게 업로드한다. 영화에서는 머리에 붙인 탐지기를 이용하여 사전을 한자씩 읽으며 생기는 뇌의 반응을 일일이 기록한다.
사람은 영혼이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생물학적인 존재라고 믿는 사람들은 뇌의 물리적인 기록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면 똑같은 존재를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네덜란드의 컴퓨터 신경과학자 랜달 코엔(Randal Koene)에 따르면 인간의 신경 구조의 회로도인 커넥톰(Connectome)을 완성하고 뇌의 활동을 계산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낸다면 인간의 정신을 컴퓨터에 이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이를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이라고 명명했다.
만일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의식을 다른 플랫폼으로 옮긴다면 영화 <아바타>처럼 완전히 다른 육체에 정신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로봇의 인공두뇌에도 이식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자아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지적 능력은 필요하지만, 육체적 인간은 할 수 없는 작업, 예를 들면 항성 간 탐사, 심해탐사, 원자력 관리 등에 혁신적인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지적능력에 자각능력까지 갖춘 슈퍼컴퓨터 ‘PINN’이 등장하는 영화 <트랜센던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장 먼저 커넥톰을 알아내야 하는데 이를 연구하는 분야인 연결체학(Connectomics) 연구자들은 2006년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의 커넥톰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예쁜꼬마선충은 몸길이가 약 1 mm인 작은 실 모양의 선충이다. 대부분 자웅동체이며 수명은 3주밖에 안 된다. 신경세포가 302개밖에 되지 않아 가장 기본적인 신경 체계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인간은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다.
예쁜꼬마선충 전자현미경사진 / Bob Goldstein, UNC Chapel Hill/CC BY SA 3.0
이야기는 1986년 위스콘신대학교의 존 화이트(John White) 교수가 예쁜꼬마선충을 8,000장의 얇은 절편으로 잘라내 302개의 신경세포의 연결성을 찾아 지도로 만든 것에서 시작했다. 1마리에 7,000여 개의 시냅스가 존재하기 때문에 신경세포 연결 쌍 (커넥톰)을 확인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인간의 시냅스는 100조 개 이상으로 알려져, 현재의 기술로 인간의 커넥톰을 그리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2011년 미국의 컴퓨터공학자인 티모시 버스바이스(Timothy Busbice)와 스티븐 라르손(Stephen D. Larson)은 이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을 이용해 로봇이나 컴퓨터에 시뮬레이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를 오픈웜(OpenWorm) 프로젝트라고 명명하고 공개하고 있다. 커넥톰 자체도 중요하지만, 시냅스 연결 강도도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가 아는 장난감인 레고 EV3 로봇에 커넥톰 데이터를 이식해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선충 로봇은 장애물을 회피하고 먹이 쪽으로 방향을 바꿔 전진하기도 했다.
이후 쥐의 망막, 곤충의 뇌 등 커넥톰을 밝혀내는 데 부분적인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결과는 오픈 커넥톰 프로젝트(Open Connectome Project)에 공개돼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 뇌의 모든 연결망 지도를 그려내는 것이며, 이는 ‘휴먼 커넥 톰 프로젝트(Human Connectome Project)’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인류는 언제나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결국 이뤄낸 점을 볼 때, 미래 과학자들이 의미 있는 성공을 이루리라 생각한다.
영화 원더랜드 속 인물들은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을 모른다고 설정되어 있다. 자기 죽음을 알게 되면 시스템의 오작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리는 결국 자신이 이미 죽었음을 자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현실 세계와 원더랜드는 충돌하게 된다.
이에 반해 바이리와 달리 현실의 존재가 살아있는 경우는 큰 존재론적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영화 속에서 정인에게뿐 아니라 두 명의 태주에게도 복잡한 감정이 발생한다. 유일하지 않은 나는 누구인가?
영화에서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지만, 원더랜드 서비스가 종료되는 시점에 원더랜드에 남겨지는 존재는 무엇이며 어떻게 대우받아야 하는가도 문제이다. 사용이 끝난 프로그램처럼 잠시 꺼 놓기만 하면 될 것인가, 그 존재가 그렇게 방치되어도 좋은 한갓 프로그램인 것인가?
영화에서 반복 사용되는 동요(Row! Row! Row Your Boat~!) 처럼 인생은 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공유는 탕웨이에게 둘이 함께 존재하는 이 현실은 다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네가 믿으면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중국의 사상가 장자도 나비의 꿈에서 깨어난 후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원래 나는 나비이고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이 꿈속인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현실과 꿈은 객관적인 실재라기보다는 내가 믿는 바로 그것이 현실이고 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