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과학읽기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문화 형성과 전파,
인간만의 것이 아니었다

개미와 함께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로 알려진 꿀벌,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 침팬지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전파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 런던 퀸 메리대 생명과학 및 행동과학부, 셰필드대 생명과학부, 신경과학연구소,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공동 연구팀은 꿀벌들도 사람처럼 혼자 학습하기 복잡한 새로운 행동은 다른 꿀벌에게 배운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 저널 ‘네이처’ 3월 7일 자에 발표했다.
    문화는 한 사회의 개체가 습득하는 모든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합적 총체로, 사회적으로 학습돼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행동을 말한다. 도구와 기술 등 인류 문화의 산물들이 발전하면서 인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가장 먼 곳까지 탐험할 수 있게 됐다.
    비둘기도 서로 학습을 통해 비행경로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등 동물 문화도 이전 행동을 기반으로 누적될 수 있지만, 인간 문화는 복잡한 행동을 포함하기 때문에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배울 수 있다. 이런 행동은 무척추동물 종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꿀벌은 사회적 학습을 통해 끈 당기기, 공 굴리기 같은 평소 하지 않는 행동을 습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회적 곤충이다.
    연구팀은 꿀벌이 군집 내 다른 꿀벌로부터 복잡한 행동을 학습할 수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퍼즐 상자를 만들었다. 상자는 꿀벌이 장애물을 피한 뒤 뚜껑을 밀고 열어야 달콤한 꿀물을 얻을 수 있는 2단계 퍼즐로 설계됐다.
    훈련받지 않은 꿀벌들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퍼즐을 스스로 풀지 못했다. 연구팀은 꿀벌 몇 마리를 골라 훈련해 과제를 완료하도록 했다. 훈련을 받아 퍼즐을 푸는 데는 이틀 정도가 걸렸다. 게다가 첫 단계인 장애물 회피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보상이 필요했다. 이후 훈련받지 않은 꿀벌과 훈련받은 꿀벌을 한곳에 넣고 관찰했다. 그 결과, 훈련받지 않은 꿀벌은 훈련받은 꿀벌에게서 배워 첫 단계도 보상 없이 통과하고 2단계까지 통과하는 것이 관찰됐다.

    동물의 감각과 행동 생태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이번 연구를 이끈 영국 퀸 메리대 라르스 치트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복잡한 수준의 행동을 꿀벌이 사회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치트카 교수는 “꿀벌도 사회적 학습이 가능하고 문화적 전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생물학과,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비교 문화심리학과, 벨기에 엔트워프 왕립 동물학회, 영국 세인트 앤드류스대 심리학 및 신경과학부 공동 연구팀은 침팬지는 서로를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결과 역시 누적적 문화 진화 능력이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인간 행동’ 3월 7일 자에 게재됐다.
    침팬지의 문화 전파에 대해서는 여러 증거가 있지만, 잠재적 해결 영역 가설이 있다. 이는 한 집단의 여러 개체가 독립적으로 문화적 행동을 재창조하면서 문화가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각 개체가 서로 노하우를 모방함으로써 생겨난다는 기존 이론을 반박한다. 잠재적 해결 영역 가설은 유인원들이 견과류 깨기와 같은 문화적 행동을 개별적으로 개발해 발전시키는 것에서 관찰할 수 있다.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보노보는 사람과(科)에 속한다.
침팬지는 인간과 약 600만 년 전 갈라졌으며 DNA 유사성이 98.8 %에 달한다.
최근 연구를 통해 인간과 마찬가지로 침팬지에게서도 문화 형성과 문화적 전파 능력이 확인됐다.
/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제공

    연구팀은 잠비아에 있는 침팬지 66마리를 두 집단으로 나눠 이 가설을 검증했다. 침팬지는 먹이 보상을 얻기 위해 3단계 퍼즐 상자를 풀도록 했다. 숲에서 나무 공을 가져와서, 상자 안의 서랍을 당겨서 연 뒤 서랍을 고정한 다음 공을 넣고 서랍을 다시 닫으면 먹이를 얻을 수 있다.
    처음 3개월 동안 침팬지들은 상자를 여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발달시키지 못했다. 그다음 연구팀은 각 그룹에서 침팬지 한 마리에게 3단계 퍼즐을 풀도록 훈련한 뒤, 그룹으로 되돌려 보낸 뒤 3개월 동안 다시 관찰했다. 그 결과, 두 그룹 모두에서 14마리의 침팬지가 상자를 여는 능력을 획득한 것을 확인했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상자를 열어 먹이를 구하는 침팬지의 숫자는 점점 늘었다.
    연구를 이끈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에드윈 반 레이우엔 교수(동물 행동·인지학)는 “이번 연구 결과는 침팬지는 서로를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라면서 “침팬지 같은 유인원에게서도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여겨졌던 누적적 문화 진화 능력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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