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1982년 1월 14일이었다. 부산 세관이 해외에 밀반출하려던 순금·은제 유물 15점을 극적으로 적발한다.
수사 결과 유물의 출처가 경북 경산 임당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임당동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압독국(기원후 102년 신라에 투항)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일대(임당동·조영동·부적리) 등에는 상당수 고분이 산재해 있었다. 그곳 과수원 구릉의 고분 9기 중에서 도굴된 금·은 제품이 해외 밀반출 직전에 회수된 것이다.
기원후 102년 신라에 의해 멸망한 옛 압독국의 후예가 둥지를 틀고 있던 경북 경산 임당유적(임당동·조영동· 부적리 고분).
1982년 이후 발굴조사에서 1,70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됐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영남대박물관의 정식 발굴이 진행됐다. 도굴분이었는데도 3,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도굴되지 않은 3기의 무덤(5·6·7호분) 중 7호분에서는 더욱 깜짝 놀랄 만한 유물이 보였다. 완형의 금동관을 비롯해 금동관모,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 등 신라산 귀금속 일체가 출토됐다.
무덤 주인공이 신라의 지배를 받고 있던 옛 압독국 지도자의 후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후속 발굴 결과 ‘1000년(기원전 4~기원후 7세기)의 삶’을 복원할 수 있는 유구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만 1,700여 기가 확인됐다.
그런데 이 임당유적만의 ‘시그니처’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골과 동물 뼈다. 당시 영남대박물관 발굴팀은 흙 속의 인골 및 동물 뼛조각까지 물체질로 일일이 걸러 수집했다.
선견지명이었다. 사실 1980~90년대까지도 발굴 조사 중 인골이나 미라가 출토되면 ‘동티가 난다’해서 곧바로 화장 혹은 이장해 버렸다. 그것이 죽은 자를 위한 예의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영남대에는 고인골을 중시하는 구석기연구자(정영화 교수)가 있었다. 이것이 이제 와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임당 유적의 ‘시그니처 유물’은 역시 인골과 동물 뼈이다. 영남대박물관은 임당유적에서 출토된 500여 구의 인골 중 259구와 동물유체 2만 5,000여 점을 보관해 왔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오래전에 일어난 미제 강력 사건을 DNA 분석으로 해결하는 시대가 됐다. 고고학도 마찬가지다. 뼈에 담겨 있는DNA로 옛사람의 혈연관계와 건강 및 질병 상태 등을 분석하는 학문이 생겼다. 고고유전학이다. 고인골에서 사람마다 다른 DNA 염기서열을 분석해서 개인과 집단의 유전적 특징을 찾아낸다. 영남대 박물관은 2018년 임당유적의 고인골 가운데 46개 시료를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사 과학연구소에 보냈다.
뜻밖의 낭보가 들렸다. 46점의 시료 중 35점에서 사람의 DNA가 존재한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후 영남대박물관은 30년간 보관한 인골과 동물 뼈를 대상으로 다각적인 융합 연구 및 분석, 복원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1500년 전 ‘경산인’들의 삶을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었다. 우선 ‘경산인들의 식단’이 파악됐다. 임당유적 중 조영동 고분에서 수습된 인골 48개체와 동물 뼈 14개체의 탄소 및 질소 안정동위원소를 분석한 자료다. 안정동위원소 분석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뼈의 화학적 성분을 연구·분석함으로써 생전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파악하는 기법이다.
분석 결과 요즘의 식단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한 가지 유의미한 자료가 눈에 띄었다. 무덤 주인공과 순장자, 즉 신분의 차이에 따라 섭취한 음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신분이 높은 무덤 주인공은 꿩과 오리 같은 야생조류와 상어, 방어, 복어 등 어패류를 많이 섭취했다. 반면 신분이 낮은 순장자는 식물과 함께 육상 초식 동물 위주로 먹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산은 내륙지방이다. 바닷가에서 어패류를 운반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낮은 신분의 순장자에게까지 어패류가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도굴이 적발된 후 긴급 조사 결과 3,0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신분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예가 임당유적 조영동 고분군의 한 무덤에서 확인된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3~5세 어린아이이다. 아이의 두개골 일부만 남아 있다. 아이는 금동제 굵은고리 귀고리와 굽은옥 장신구를 달고 있다. 머리맡에는 ‘굽다리 접시’와 ‘목 긴 항아리’ 같은 제의용 도기들이 놓여 있었다.
이 항아리 속에는 흙과 돌로 만든 여러 가지 장난감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의 바로 위에 15세 정도의 순장자가 매장돼 있었다. 그 위에는 금동관이 놓여 있었다. 김대욱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의 해석이 눈길을 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인 어린이가 사고나 질병으로 죽었을 겁니다. 그러자 이 아이를 생전에 돌봤던 몸종을 순장했을 겁니다. 아이의 신분을 상징하는 화려한 장신구를 달아주었고, 아이의 장난감들을 각종 제사용품과 함께 묻어주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이 아버지는 자신의 금동관을 넣고 무덤을 덮었고요”
김대욱 연구원은 “아버지는 비통한 심정으로 장차 이 아이가 성장하면 물려주었을 금동관을 마지막으로 올려놓았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얼핏 들으면 어린 자식의 죽음을 가슴 속에 묻은 아비의 애끊는 심정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한 꺼풀 더 벗겨보자. 아이의 사망과 함께 속절없이 따라 죽어야 했을 15세 순장자의 가련한 신세는 어떠한가.
임당 고분에는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해 일가족이 순장된 예도 있다. 예컨대 5세기 초반 축조된 무덤의 ‘딸린덧널(부곽)’에 순장된 성인 남성(36~50세)과 10세 전후의 여자아이는 아빠와 딸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무덤(5세기 중후반)에서는 ‘으뜸덧널(주곽)’에 안장된 주인공(성인 남성·31~40세)의 곁에, 여자아이(4~8세)가 누워 있었다. 발 쪽에 축조된 ‘딸린덧널’ 안에는 성인 남성(41~60세)과 성인 여성(36~50세)이 순장돼 있었다. DNA 분석 결과 ‘딸린덧널’에 순장된 성인 남녀는 부부로 분석됐다. 또 무덤 주인공 곁에 순장된 여아(4~8세)가 이 부부의 딸로 밝혀졌다.
5세기 후반 무덤의 으뜸덧널에 순장된 어린아이와 20여 년 뒤 축조된 또 다른 무덤의 순장자(혹은 주인공)는 남매 관계로 추정됐다. 순장자들은 생전에 주인공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시동이나 시녀일 가능성이 짙다.
이뿐이 아니다. 무덤 주인공이 어린아이일 경우 또래의 어린 순장자와 함께 성인 여성(21~35세)이 묻히기도 했다. 어린 주인공을 모시던 유모나 보모가 순장된 것도 가슴 아픈데, ‘죽은 뒤 같이 놀아줄 또래 아이’까지 희생시킨 것이다.
신라에서 순장제도가 국법으로 금지된 것은 502년(지증왕 3)이다. 그렇다면 5세기 중·후반에 순장된 이들이야말로 ‘불운의 아이콘’이었다고 할 수 있다. 5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순장의 비극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출산 중 사망의 극적인 예(임당 유적 조영동 고분군)가 있다.
무덤 안에는 21~35세가량의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놓여있었는데, 그 옆에 열 달 남짓 성장한 태아 뼈가 존재했다.
출산 과정에서, 혹은 출산을 전후한 시점에서 산모가 태아와 함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영남대박물관 제공
‘경산인들의 사망률 분포 분석’도 눈길을 끈다. 성별과 사망 연령 등을 파악할 수 있는 112개체를 분석한 결과 21~35세의 여성이 많았다. 즉 ‘여성’(추정 포함)의 21~35세 사망 건수(28개체)가 ‘남성’(추정 포함·16개체)을 능가했다. 반면 36세를 넘어가면 남성(추정·31개체)이 여성(21개체)보다 많아진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사망한 여성들의 수가 많았다는 얘기다.
출산 중 사망한 극적인 예(임당유적 중 조영동 고분군)가 있다. 이 무덤 안에는 21~35세의 여성 인골이 가지런히 묻혀 있었다. 그런데 발굴당시에는 열 달 남짓 성장한 태아 뼈가 존재했다는 것을 몰랐다. 여성 인골은 엄마이고, 태아 뼈는 그 엄마의 아이였을 것이다. 출산 과정에서, 혹은 출산을 전후한 시점에서 산모가 태아와 함께 안타깝게 사망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하나 최소 40세 이상으로 추정되는 노년 인골이 112개체 중 11개체에 불과했다. 40세를 넘긴 분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DNA로 파악한 무덤 피장자들의 혈연관계도 눈길을 끈다. 172개체의 시료를 분석한 결과 ‘부모-자녀 혹은 친형제 자매’로 추정할 수 있는 개체가 11쌍이나 확인됐다. 또 ‘조부·조모와 손자’, ‘삼촌·고모·이모-조카’, ‘이복·이부 형제자매’ 등으로 추정할 수 있는 개체도 37쌍 분석됐다. 인골 31개체의 대퇴골을 토대로 분석해 보니 경산인(남성)의 평균 키는 165 ㎝ 정도였다. 2020년 복원된 남자 주인공과 여성 순장자를 대상으로 인골 DNA를 분석했더니 기막힌 결과가 나왔다. 두 인골의 혈액형이 AO형이고, 젖당 내성이 없다는 사실까지 밝혀낸 것이다.
또 여성 순장자는 알코올을 빠르게 분해하지 못해 술에 금방 취하고 숙취가 심했을 것 같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심혈관계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남성 주인공도 급성 심장사나 죽상 동맥경화증 등에 취약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임당유적 고분에 부장된 토기에는 다양한 음식 잔존물이 확인됐다. 이중 상어 뼈가 유난히 돋보인다. 상어 하면 경상도에서는 ‘돔배기’ 를 떠올린다. 돔배기는 상어고기를 토막 내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음식이다. 이 돔배기의 역사가 2000~1500년이나 된다는 뜻이다. DNA로 풀어본 1500년 전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 1980년대 물체질로 흙 속의 인골과 동물 뼈를 걸러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