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서윤후 시인
집에 틀어박혀서 글만 쓰느라, 몸도 마음도 허약해지는 것은 아닌지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퇴근 후 인산인해를 이루는 헬스장 풍경 속에서 나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근육에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회복하면서 근육을 성장시키는 이 운동의 반복 속에서
나는 영혼을 단련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생각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을까, 마음은 어떻게 두꺼워질 수 있을까 하고.
책이 우리 마음에 좋은 상처를 낸다고 믿는다. 헬스장에 찾아가 애써 무거운 것을 들며 근육을 찢고, 회복시키며 성장을 거듭하는 사람들의 육체처럼 마음에도 그러한 과정이 분명 필요하지만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과하는 일이 많다. 어떤 문장이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갈 때의 반짝이는 상처. 그 상처 위에 서서 남겨진 문장과 지나온 시간을 덧대며 생각에 빠져보는 일을 좋아한다. 어떤 책은 내 속마음까지 다녀온 것처럼 진실하기도 하고, 어떤 책은 내가 결코 살아볼 수 없는 미지의 시간을 눈앞에 데려다 놓는 것 같아 신기하다. 또 어떤 책은 주변에서 칭찬 일색임에도 불구하고 도통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듯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책들이 있다. 나에게 좋은 상처를 남기고 아물어갈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책을 만난다는 건,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만큼 흔치 않게 찾아오는 삶의 행운이다.
다치지 않으려고 많은 것을 피해 다닌다고 느껴질 무렵엔 오히려 내가 건강하다는 생각보다 위축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느꼈다. 작은 생채기까지 감당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언제나 제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시를 쓰는 동안에도, 책 원고를 집필하는 순간에도 내 문장이 읽는 이의 깊은 안쪽을 긋고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깊이 있어서 보이지 않던 곳에도, 당신을 지탱하고 있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글을 언제나 쓰고 싶었으니까.
내가 책을 더 사랑하게 된 계기가 있다. 침실에 책 한 권도 두지 않겠다는 나만의 규칙을 세우고 나서부터다.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생활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책 먼지가 누적되면서 삶의 질은 티 나지 않게 나빠졌다. 어느 날 이사를 하게 되면서부터 ‘NO PAPER ZONE’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침실만큼은 책을 두지 않는 것으로 규칙을 세웠다. 책을 들고 침실에도 가지 않고, 소파나 침대에 앉아서도 책을 읽지 않는다. 책장을 작업실로 쓰는 작은 방에 모두 옮기고, 독서와 휴식의 물리적인 거리를 두었다. 사람들이 농담 삼아 “잠이 오지 않을 때 책을 읽는다”라고 말할 때마다 사실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 책은 상처를 내는 일일뿐더러, 책을 읽다 보면 ‘내적 흥분’을 하게 되어 수면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 몰입하는 내 입장에서 독서는 잠들지 않는 방법에 더 가까웠다.
책이 없는 침실에 누워 있으면, 책이 읽고 싶어진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수고롭게 작업하는 방으로 가야만 한다. 흐트러진 자세로 누워 책을 읽고 싶지만, 단 십 분이라도 책상 앞에 앉아 올곧은 자세로 책을 펼쳐 읽는다. 좋은 문장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독서 노트에 그것을 따로 옮겨 적어둔다. 눈으로 읽을 땐 보이지 않던 단어나 표현이, 손으로 써서 읽다 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채워진 독서 노트는 또 한 권의 책이 된다. 이것은 내 아름다운 상처의 기록이자 회복의 과정이다. 내가 어떤 문장에서 머무르고 헤맸는지 알 수 있는 한 시절의 단서가 된다.
종종 북토크나 낭독회에 찾아온 독자들이 귀띔하듯이 두고 가는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나의 책을 산 적 있었는데, 그땐 막상 별 감흥이 없어서 덮어두었다가 최근에 생각이 나 다시 읽기 시작했더니 너무 좋았다는 그런 이야기. 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책에 흐르는 시간과 자신이 보내는 시간의 흐름이나 결이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책과 자신이 함께 다른 환경에서 기다렸다가 만나는 시간이 그렇다. 자신의 때에 맞는 책을 만나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책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많은 독서 실패의 경험이, 어느 한 줌의 기쁜 마주침을 더 환하게 비추기도 한다.
독서는 그 상처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 상처와는 조금 다르다. 상처를 열어 그 깊은 곳까지 들어가 마음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돌보는 일. 그리고 그 상처가, 지나온 무성한 시간을 한꺼번에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나에게 책은 여가 생활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문제였다.
책이 없는 침실이라서, 책을 생각하게 된다. 방금 책상 위에 덮어둔 책, 어제까지 읽었던 책……. 조금 떨어져서 그리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애틋하게 그리듯이. 책을 그리워하는 일까지도 내가 책에게서 느끼는 책무다. 독서는 수많은 방을 지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나와 가장 어울리는 방 하나를 찾은 다음, 그곳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일과도 같다. 그 침실에도 책이 없다. 이야기가 되어가는 사람이 잠들어 있을 뿐.
서윤후 시인 시와 산문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이 건네는 매혹적인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