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2018년 3월 타계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1세였던 1963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20년 뒤인 1985년 급성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고 겨우 살아났다.
대신 웃음소리를 제외한 모든 목소리를 잃고 컴퓨터 음성합성기를 통해 말하게 됐다.
호킹 박사처럼 루게릭병이나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말을 잃는 경우가 많다.
SF영화 ‘아바타’에는 부상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군인이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기술을 이용해 자기의 뇌와 연결된 또 다른 자아를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또 다른 SF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뇌와 컴퓨터가 연결돼 만들어진 가상현실이 등장한다. 최근 뇌공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뇌 자극을 통해 뇌·신경 세포의 손상과 파괴로 나타나는 불치병인 파킨슨병과 루게릭병의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UC 데이비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브라운대 의과대학 공동 연구팀은 BCI를 이용해 최대 97 %의 정확도로 뇌 신호를 음성으로 변환할 수 있고, 장치를 작동시키고 불과 몇 분 만에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루게릭병) 환자가 말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이런 놀라운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8월 15일 자에 실렸다.
고 스티븐 호킹 박사도 컴퓨터를 이용해 말하는 언어 전환 장치를 사용했다. 이 장치는 눈동자나 미세한 몸짓으로 컴퓨터 커서를 작동시키거나 화면의 글자를 선택해 말하거나 글을 쓸 수 있게 해준다. 문제는 기존 음성 BCI 시스템은 자주 단어 오류가 발생해 정상적 대화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고, 기계음이라서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어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에 최근 과학자들은 ALS 같은 신경학적 문제로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뇌 신호를 텍스트로 바꾸고 음성으로 전환하는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이에 이번 연구팀은 ALS 환자인 45세 남성 케이시 해럴을 대상으로 ‘브레인게이트’로 이름 붙여진 BCI 임상시험을 했다. 해럴은 사지마비와 함께 언어 장애까지 겪고 있는 ALS 환자다. 연구팀은 해럴에게 언어 관련 뇌 영역인 ‘왼쪽 중심앞이랑’(Left Precentral Gyrus)에 네 개의 마이크로 전극을 삽입했다. 이 전극은 256개의 피질 전극에서 보내오는 뇌 신호를 기록하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뇌 활동 패턴을 음절이나 음성 발화 단위인 음소로 바꾼 다음 단어로 변환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ALS 진단을 받기 전 해럴의 음성 녹음 기록을 사용해 인공지능을 훈련시켜 컴퓨터에서 나오는 음성이 그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첫 훈련 단계에서는 장치 활성화 30분 만에 99.6 %의 정확도로 50단어 어휘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1.4시간을 추가로 훈련시킨 다음에는 해럴이 구사할 수 있는 잠재적 어휘의 규모가 12만 5,000단어로 늘어났고, 이를 90.2 %의 정확도로 재생할 수 있었다. 지속적 업데이트를 통해 이번에 개발한 BCI는 정확도를 97.5 %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32주간 84회의 임상시험을 통해 하렐은 248시간 동안 대면 대화와 영상 통화에서 음성 BCI를 이용해 정확하게 자기 목소리로 의사소통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를 이끈 데이비드 마이클 브랜드먼 교수(기능성 신경외과)는 “이번 BCI 기술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정확한 언어 신경 장치로 ALS를 비롯해 마비 환자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며 “기존 장치들과 달리 반응 속도가 빠르며 가장 뛰어난 점은 기계음이 아니라 환자 자기의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2018년 3월 타계한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루게릭병이나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말을 잃는 경우가 많다. 호킹 박사는 컴퓨터를 이용해 말하는 언어 전환 장치를 사용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오른쪽) 케이시 해럴이 컴퓨터 화면에 있는 것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을 곧바로 글과 음성으로 옮기는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 미국 UC데이비스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대(UCSF) 의대 신경외과, 신경학과, UCSF 신경과학 연구소, UC버클리 생체공학과 공동 연구팀은 개인 맞춤형 신경 신호를 이용한 적응형 심부 뇌 자극(adaptive Deep Brain Stimulation, aDBS)으로 파킨슨병 환자의 운동 장애 시간을 50 % 줄였다는 연구 결과를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 8월 20일 자에 발표했다.
심부 뇌 자극(Deep Brain Stimulation, DBS)은 뇌의 특정 위치에 미세한 전극을 이식한 다음, 주기적으로 전기자극을 줌으로써 뇌의 활동을 억제하거나 활성화하는 치료술로 파킨슨병 같은 운동 장애 치료에 널리 사용된다. 기존 DBS는 개별 환자의 활동이나 증상과는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강도와 주기로 자극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개별 환자의 신경 신호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뇌 자극의 강도나 지속시간을 자동 조정하는 aDB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구팀은 10~15년간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47~68세 환자 4명을 대상으로 뇌 신호 감지와 제어가 가능한 전극과 신경 자극기를 이식했다. 연구팀은 환자의 뇌 활동을 병원과 가정에서 기록하는 동시에 환자들이 스스로 보고한 운동 일지와 스마트워치로 증상을 모니터링했다. 이를 통해 시상하핵과 운동피질에서 파킨슨병의 활동 장애의 신뢰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로 뇌 활동 신호를 식별해 낸 뒤 7~31개월 동안 aDBS를 실시했다. 그 결과 aDBS가 기존 DBS 치료법에 비해 운동 장애의 지속 시간은 물론 증상 정도를 50 % 더 줄여 실험에 참여한 환자들 모두 삶의 질이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적응형 심부 뇌 자극’(aDBS) 작동 원리 / 서울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