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도대체 라일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인사이드 아웃2>

사진보다 그림이 대상의 특징을 잘 잡아내는 경우가 있다. 잡다한 배경을 생략하고 대상의 특징만을 부각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실사영화보다 나은 애니메이션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인사이드 아웃2>가 그런 영화이다. 제목인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의 사전적 의미는 ‘안팎이 뒤집히다’ 또는 ‘환하게 알다’라는 뜻이다. 감정을 의인화하면서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잘 설명하는 제목이다.

전편은 11살의 라일리의 감정을 주제로 했다면 9년 만에 공개된 2편에서는 사춘기에 들어선 13살의 라일리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1편의 마지막에 등장했던 아이돌 섬은 사라졌지만 엉뚱 섬은 건재하고, 우정 섬은 늠름하게 커졌지만 가족 섬은 망원경으로 봐야 할 정도로 작아졌다. 하지만 이제 사춘기에 들어선 라일리에게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말고도 새로운 감정이 필요하다. 불안과 당황, 따분, 부러움이 그것이다.

자고 일어난 라일리는 엄마에게 맨날 잔소리만 한다고 좀 내버려 달라고 버럭 화를 낸다. 그러다가 자기는 최악이라고 대성통곡을 하고 곧 자기 냄새가 너무 구리다고 평생 아무 데도 못 가는 신세라고 왕짜증을 낸다. 당황한 엄마는 ‘나비처럼 너에게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좋은 말로 타일러보지만, 엄마에게 용같이 불을 뿜고 나가 버린다. 엉뚱하기는 하지만 착하고 사랑스러운 라일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인사이드 아웃2 감정들

인간 뇌의 발달 과정

인간은 탄생 과정에서 결정적인 장애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큰 두뇌다. 인간은 동일한 크기의 포유류에 비해 6배가 큰 뇌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침팬지나 고릴라보다도 3배나 크다. 그렇다고 태어날 때 완성된 뇌 구조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그 이상 큰 뇌를 가지게 되면 출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태어난 후에 뇌를 성장시키는 것으로 전략을 잡았다. 출생 시 약 300 g이던 뇌는 다섯 살 정도가 되면 성인 크기인 1,300 g까지 성장한다. 대략 뇌의 75 %가 출산 뒤에 크는 성장 패턴을 갖게 됐다.

반제품 상태로 태어난 인간의 뇌는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연결을 만든다. 뇌의 기본적인 구조를 만들고 각종 감각을 담당하는 부위들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사회적 지능의 형성으로 이 작업이 얼추 마무리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그것이 사춘기다.

변연계 / Wikimedia commons by BruceBlaus

사춘기가 시작되다

사춘기는 2차 성장이 나타나며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를 말한다. 아직 자아에 대해서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대략 남자아이는 11~13세, 여자아이는 조금 빨라서 10~12세에 시작되는데, 이 시기가 끝나면 합리적인 생각으로 충동적인 감정을 조정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 사춘기에는 보이는 몸도 성인으로 성장하지만 보이지 않는 뇌도 성숙해진다. 이전에 엉성하게 만들어진 뇌가 리모델링 수준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감정과 새로운 감정이 뒤죽박죽된다. 세상의 온갖 걱정을 다 하면서도 갑작스러운 감정의 폭발을 경험하게 되는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본인도 놀라는 폭발적인 감정과 충동이 나타나지만, 한편으로는 이성적인 사고가 싹튼다.

뇌의 차별적인 발달

뇌는 크게 대뇌피질, 변연계, 시상하부와 좌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으로 나눠볼 수 있다. 사춘기의 뇌는 감정, 행동, 동기부여 등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편도체에 비해 대뇌피질 중 합리적인 판단, 미래 계획 등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의 성숙이 더디다. 따라서 전전두엽이 본연의 역할을 하기 전에는 감정과 본능에 더 민감하고, 쉽게 흥분하거나 좌절하게 된다. 별생각 없이 말을 던졌는데 사춘기 청소년이 화를 내거나 우는 게 다 이 때문이다. 그래서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프랜시스 젠슨 교수는 사춘기를 ‘브레이크 없는 페라리’로 비유한다.

전전두엽에서의 회백질의 연령별 성숙 과정 / Gogtay et. al, 2004, https://doi.org/10.1073/pnas.0402680101

사춘기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

또한 사춘기 무렵 뇌에서는 유년기에 만들어졌지만 사용하지 않던 뉴런의 연결을 정리하는 가지치기(Synaptic Pruning)가 일어난다. 기본적으로 뇌의 신경 회로는 전달되는 자극, 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더 활발해지고 발달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장려하는 것이다. 반면 자극이나 정보가 없는 신경 회로는 생성되지 않고 이미 생성된 신경회로라도 이를 끊어버릴 수 있다. 생리학적으로는 불필요한 신경세포 간의 연결인 시냅스를 제거해 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한다.

그런데 가지치기는 뇌의 뒤쪽에서 시작되어 전전두엽의 피질은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다. 미국정신건강연구소의 고그티(Gogtay)를 비롯한 과학자들에 따르면(2004) 전두엽의 발달은 뒤쪽에서 시작하여 전전두엽 쪽으로 진행되며 약 20세 무렵에 완성된다. 문제는 전전두엽 피질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의 리모델링이 완성될 때까지 사춘기의 뇌는 의사결정을 상당 부분 변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변연계 중 편도체는 감정, 충동, 공격성 및 본능적인 행동에 관여한다. 이 때문에 사춘기의 청소년은 감정 폭발이 일어나기 쉽다.

가지치기가 진행되면서 신경세포에는 핵과 축삭 말단 사이의 축삭돌기에 미엘린 화가 진행된다. 미엘린 화(Myelination)는 마치 전선에 피복을 감싸는 것과 같은 절연 과정으로 이해하면 되는데, 이 작업이 완성되면 신경전달 속도가 매우 빨라진다. 특정한 학습이나 자극이 들어오면 해당 축삭돌기에 미엘린 두께가 두꺼워져 속도와 지능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뇌 안쪽에는 백질부가 형성되고 반면 신경세포체가 모인 피질부는 회색을 띠게 된다.

신경세포 / Wikimedia commons by Dhp1080

영화의 종반부에서 불안이가 너무나 걱정을 해 라일리를 몰아붙인 결과, 득점에만 신경을 쓰다가 친구와 동료를 모두 잃을 뻔한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자기의 행동이 용서되지 않지만,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자책하며 극단으로 몰아간다.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과 숨을 쉴 수 없는 증상을 보인다. 이를 상심증후군(Broken Heart Syndrome) 또는 다코츠보 증후군(Takotsubo Syndrome)이라 부른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드레날린 같은 교감신경 호르몬의 분비 증가에 따른 심박 증가와 혈압 상승으로 보인다. 이를 아드레날린 러시라고도 부른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뇌 과학은 영상 장치의 발달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뇌는 다른 장기와는 다르게 살아있는 개체의 활동을 파악할 수도 없고 근육이나 혈액의 흐름 등 직접적인 기계적 관계를 밝혀내기도 어려웠다. 기능적 자기공명장치(fMRI) 등이 꾸준히 개선되면서 앞으로는 더 많은 정보가 모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점점 많은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마치 양자역학이 발전하던 20세기 초반의 모습에 비견할 만하다. 이제 단순하지만은 않은 라일리에게 기쁨과 같이 하나의 감정으로만 자아를 만들 수는 없다. 불안만큼이나 기쁨 자신도 라일리를 위한다는 핑계로 독점할 수는 없음을 받아들인다. 그제야 비로소 라일리만의 자아가 만들어지게 된다. 많은 변화가 라일리에게 일어나지만 라일리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어떤 변화는 배척하고 다른 변화는 받아들이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라일리만의 자아가 형성된다. 알을 깨고 나와 새가 되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하지만 가족과 동료들의 응원과 도움은 큰 힘이 된다. 세상은 혼자만이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들의 중요성도 일깨우는 잘 만든 영화가 <인사이드 아웃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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