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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영진 여행칼럼니스트
독일 뮌헨은 가을이 분주하다.
세계 최대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 기간이면 지구촌 맥주 마니아들이 모여 거리가 떠들썩해진다.
뮌헨은 쌉쌀한 맥주 향 너머 오랜 과학의 온기를 간직한 도시이기도 하다.
뮌헨은 중세 바이에른 왕국의 주 무대로 850여 년을 군림한 도시다. 박물관 지구에 들어선 50여 개의 박물관은 도시의 세월과 문화적 수준을 강변한다. 그중 국립 독일 박물관(Deutsches Museum)은 100년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박물관으로, 과학박물관의 롤모델로 사랑받는 곳이다.
국립 독일 박물관은 50개 분야에 12만 5천 점의 전시물을 소장 중이며 일반에 공개된 전시물만 1만 8,000여 점에 달한다. 물리, 천문 등 기초과학부터 선박, 자동차, 악기, 로봇, 바이오 등 과학의 응용 분야까지 총망라돼 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실물 크기의 배와 잠수함, 독일제 카메라와 자동차, 열차 등도 전시 중이다. 박물관에서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옛 과학자들의 실험을 재현할 수 있으며, 층마다 체험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세계적인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국립 독일 박물관에서 과학 소설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 독일 박물관에는 과학 강국 독일의 저력이 담겨 있다. 매년 뮌헨 전체 인구에 준하는 150만여 명이 국립 독일 박물관을 찾으며, 단일시설 방문객으로는 독일 최다를 자랑한다. 도시 뮌헨은 과학 연구의 산실이기도 하다. 독일의 과학 연구는 학회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대표하는 핵심 연구학회가 뮌헨을 거점으로 활동 중이다.
풍성한 과학적 자양분은 뮌헨이 독일 최대의 자동차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했다. 뮌헨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인 BMW의 본사와 공장, 박물관이 자리했다. 뮌헨 인근의 잉골슈타트에는 아우디의 본사가 있다.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명성의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역시 이곳 뮌헨으로 자리를 옮겨와 ‘뮌헨 모빌리티 쇼’로 이름을 바꿔 치러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시물을 즐길 수 있는 독일박물관 / ⓒShutterstock
BMW 박물관 내부 / ⓒShutterstock
가을이 깊어지면 뮌헨은 축제의 도시로 변신한다.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전 세계의 맥주 애호가들이 톡 쏘는 생맥주를 즐기기 위해 뮌헨을 찾는다. 뮌헨의 숙소는 일찌감치 동이 나고 인근 국가에서 뮌헨까지 오가는 특급 열차가 편성되기도 한다. 뮌헨에 거주하는 인구보다 많은 관광객이 매년 옥토버페스트 기간 동안 이 도시를 방문한다.
옥토버페스트는 매년 9월 말에 시작돼 10월 초까지 약 보름간 개최되는데 올해는 9월 21일부터 10월 6일까지 열렸다. 축제 기간에 맥주는 평균 600만 리터, 소시지는 100만 개 이상이 소비된다고 한다.
가을에 펼쳐지는 뮌헨의 풍경은 이채롭다. 양조장에서 마련한 커다란 비어 가든 안에 모여 ‘프로스트(Prost, 건배)’를 외치며 1리터짜리 맥주를 들이켜는 풍경은 압권이다. 모두 얼굴이 불콰해진 채 어깨동무하고 춤도 추며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도 축제 기간만큼은 모든 게 너그럽게 용서된다. 마리엔 광장 뒤편에 자리 잡은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전 세계 맥주 애호가들의 집결지로 유명한 곳이다. 생맥주 한 잔에 백발 수염 할아버지들의 즉석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맥주를 즐기기 좋은 옥토버페스트 기간 / ⓒGettyImages
뮌헨의 거리는 활기와 예술 향이 가득하다. 독일의 몽마르트르로 불리는 슈바빙은 젊음과 예술의 거리다. 릴케, 칸딘스키 등 아티스트들의 작업실이 슈바빙 거리에 있었다. 19세기 풍 길목은 해 질 무렵이면 재즈와 산책, 바와 극장이 어우러진다.
마리엔 광장으로 이어지는 노이하우저 거리는 백화점, 쇼핑센터가 즐비하다. 빅토리안 마켓의 화려한 천장과 유리 장식 아래서 뮌헨의 별미인 프레첼 빵을 맛볼 수 있다. 광장 옆 시청 건물의 시계탑에서는 매일 낮 인형극이 열린다.
도시를 가르는 이자르강을 건너면 세계 3대 패션 거리인 막시밀리안 거리에 닿는다. 이곳은 철학과 예술가의 흉상이 거리 양쪽에 늘어서 있다. 1385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뮌헨 레지덴츠, 백조의 호수를 간직한 님펜부르크 궁전, 쌍둥이 탑이 인상적인 프라우엔 성당 등이 뮌헨의 시간여행을 이끈다.
뮌헨은 독일의 수도가 아니면서도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러낸 도시다. 뮌헨에서는 72년 올림픽, 2006년 월드컵 개막전 등 세계 최대의 축제들이 열렸다. 88년 축구 유럽컵 결승전, 97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등 굵직굵직한 빅 게임이 이곳에서 개최됐다. 과학과 문화, 축구와 맥주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도시가 바로 뮌헨이다.
쇼핑을 즐기기 좋은 막시밀리안 거리 / ⓒUnsplash Yves Cedric Schulze
뮌헨 올림피아파크는 올림픽 스타디움이 있어 다양한 경기와 행사를 즐길 수 있다. / ⓒGetty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