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의 새로운 기준입니다.
글
박상미 교수
싸우지 않는 부부나 연인은 없다.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것이 남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첫째, ‘삼생일말’,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자.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실수 한 번으로 관계가 파탄 날 수 있다. 3초 만에 뱉은 내 말이, 상대의 가슴에 30년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우리 뇌는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보다 더 정확하게 오래 기억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상대가 가진 상처를 파악하고,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을 기억해 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비 없는 자식인데 뭘 보고 배웠겠어”, “피는 못 속이지. 당신 아버지 바람둥이였다며?”
아버지의 외도 때문에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하고, 힘든 유년기를 보낸 37세 남성은 부부싸움 중에 아내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후 이혼을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는 것이 삶의 목표였는데, 저 말을 들은 이후로 도저히 부부관계를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아내가 남편을 설득해 상담실에 함께 왔지만, 남편의 마음 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속담에 아무렇게나 주고받는 것은 말의 배설이지 대화가 아니다.
둘째, 비난·무시·증오하는 말은 서로 피해야 한다.
“당신은 그 버릇을 평생 못 고쳐?”, “오늘만 그랬냐? 당신은 맨날 그 모양이야!”, “너나 잘해. 왜 가만히 있는 나더러 잘못했대?”, “웃기시네!”, “아직도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비난하고, 무시하고, 증오하는 말들은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서로의 감정에 상처만 낸다.
셋째, ‘지금’, ‘우리의 문제’만 가지고 싸워야 한다.
“당신은 옛날에도 그랬어”, “당신 부모도 그렇고….”
남자보다 여자들이 과거의 일을 현재의 싸움에 끌어와서 상대를 비난하는 기술이 더 뛰어나다. 남자들은 과거에 종결된 싸움은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이 현재의 싸움에 과거의 싸움을 끌어와서 더 거센 비난을 할 때, 남자들이 겪는 심리적 좌절감은 매우 크다. 현재 우리의 싸움에 상대의 가족을 언급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넷째, ‘1시간 휴전 법칙’을 정하자.
조개를 해감할 때 소금물에 담가 검은 봉지를 덮어서 1시간 정도 시간을 주면, 조개는 입을 벌리고 이물질들을 다 뱉어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감정이 격해져서 대화가 잘되지 않고, 상대방의 진심을 알기 어려울 때는 잠시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그러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 서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흥분한 상태에서 말실수할 가능성을 줄이게 된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부부 50쌍에게 싸운 다음 화해할 때 어떤 노력을 하는지 물었다. 1위는 ‘아무것도 안 한다’였다. 하지만 싸 우고 나서 어떻게 푸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갈등을 푸는 방식은 모든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행복한 연인이나 부부도 갈등은 겪는다. 차이라면 행복한 남녀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들은 갈등을 빠르고 유연하게 푼다는 것이다. 자주 싸우고 잘 풀지 못하는 커플은 그 사람의 마음을 들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의 성격을 비난하기 바쁘다. 상대에게 본인의 생각을 주입시켜서 ‘나처럼 좋은 성격’으로 바꾸어 놓기 위해 더 열심히 싸움에서 이기려 든다.
상담실에 찾아온 33세의 미혼 남성이 “연애가 잘 안된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여자 친구와 싸우면 화해하는 게 힘들고, 이전 여자 친구와 다른 성향의 여자 친구를 만나도 비슷한 이유로 갈등을 겪다가 헤어지곤 해요. 제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상담을 지속하면서 알게 됐다. 청년은 부모님이 갈등을 겪는 모습만 보며 자랐지, 화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싸우고 화해하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경우 연애는 선호하지만, 결혼은 두려워하는 성향이 크다. 가정을 안식처가 아닌 전쟁터로 인식하는 것이다. 결혼하더라도 심한 갈등을 겪게 되면 ‘우리 부모처럼 맨날 싸우고 매일 헤어지느니, 차라리 초기에 빨리 헤어지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성급하게 이별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부부의 이혼이 자녀의 이혼으로 이어지는 확률이 서양에서는 매우 높게 나타나고, 우리나라도 점점 그 수치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싸운 뒤 자녀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다. 싸우더라도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싸움의 기술’을 기억하며 싸우고, 아이들 앞에서 싸우게 됐다면 반드시 잘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박상미 교수 한양대학교 일반대학원 협동과정교수, 한국 의미치료학회 부회장, 힐링캠퍼스 공감 학장. <박상미의 가족상담소>, <마음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울한 마음도 습관입니다> 등을 집필했다. 유튜브 <박상미 라디오>를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