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과학읽기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

플라스틱 씹어 먹어줄게···.
청국장에서 찾은 플라스틱 분해 미생물

지구 온난화와 함께 환경 분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급증이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증가하면서 미세플라스틱의 폐해도 점점 커지고 있다. 크기가 5 ㎜ 이하인 미세플라스틱은 하수처리 과정에서도 걸러지지 않아 하수구를 통해 그대로 강과 바다로 흘러간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플라스틱 용기와 마스크 등 폐플라스틱이 바다로 들어가면 햇빛이나 바닷물의 염분으로 마모돼 서서히 부서지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만든다. 미세플라스틱은 토양, 표층수, 바다로 들어가 먹이피라미드 가장 아래쪽에 있는 생물들이 먹고, 먹이사슬을 따라 최종 소비자인 사람에게 전달돼 축적될 가능성도 크다.

고초균을 삽입한 생분해성 폴리우레탄의 생산과 분해 과정을 묘사한 삽화 /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UCSD) 제공

    이런 가운데 한국인 과학자가 주도한 연구팀이 플라스틱 고분자 물질을 빠르게 분해하는 미생물을 개발해 눈길을 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UCSD) 나노공학과, 생물공학과, 조지아대 신소재연구소,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 바스프(BASF) 미국 열가소성 폴리우레탄 연구소, 덴마크 덴마크공과대 공동 연구팀은 플라스틱 유효 수명 동안에는 휴면 상태에 있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 깨어나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박테리아 포자를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인 과학자 김한솔 박사가 주도했다. 이 연구 결과는 기초 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5월 1일 자에 실렸다.

제1저자인 김한솔 UCSD 박사가 고초균을 포함한 생분해성 열가소성 폴리우레탄을 늘리고 있다.
이번에 개발한 플라스틱은 기존의 열가소성 폴리우레탄보다 약 40 % 더 강하고 탄력이 우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 (UCSD) 제공

    열가소성 폴리우레탄(TPU)은 고무와 플라스틱의 장점을 모두 가진 고분자 물질로, 휴대전화 케이스, 신발, 바닥 매트, 쿠션, 메모리폼, 자동차 부품 등 여러 제품에 사용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TPU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수명이 다하면 폐기물로 버려진다. 생분해성 폴리우레탄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는 많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들은 고분자 물질의 고유한 특성이 손상되기 때문에 산업용으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몇 가지 균주를 채취해 TPU를 유일한 탄소원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평가하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균주를 선택했다. 그 결과, 얻은 것이 고초균(Bacillus subtilis)이다. 고초균은 공기, 마른풀, 하수, 토양에 존재하는 호기성 세균으로, 콩의 발효식품인 메주나 낫토 생산에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더군다나 플라스틱을 생분해한 뒤 남은 고초균 포자들도 인간과 동물에게 무해하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팀은 고초균의 유전자를 변형해 플라스틱 처리 온도인 135도에서 박테리아 포자가 완벽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변형 고초균 포자와 TPU 조각을 플라스틱 압출기에 넣고 녹인 뒤,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핵심은 고초균 포자를 성장시키고, 일정 시간 동안 고온에 노출한 뒤 자연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철근으로 콘크리트를 보강하는 것처럼 고초균 포자는 TPU 강화 충전재 역할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고초균이 포함된 TPU로 만들어진 제품은 기존 TPU보다 신축성과 기계적 강도 모두 향상된 것으로 관찰됐다.
    또, 연구팀은 유전자 변형된 고초균을 이용해 시뮬레이션 실험한 결과, 플라스틱을 땅속에 묻으면 플라스틱이 빠르게 생분해되는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팀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37도, 상대 습도 44~55 %의 상태에 놔두면 5개월 이내에 90 % 이상 생분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에 따르면 플라스틱과 섞인 돌연변이 균주는 분해된 뒤 다시 분리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온에서도 살아남도록 유전자 변형한 고초균(오른쪽)을 삽입한 생분해성 폴리우레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UCSD) 제공

고초균을 삽입한 생분해성 폴리우레탄을 적정한 온도와 습도 환경에 노출하면 5개월 만에 90 % 이상 분해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UCSD) 제공

    애덤 파이스트 UCSD 박사는 “고초균 포자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플라스틱의 인장 강도와 신축성 등 기계적 특성이 향상된다는 점은 놀랍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실험실 규모로 실행됐지만, 산업적 규모로 사용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추가 연구는 생산량을 늘리는 것을 포함해, 고초균 포자를 진화시켜 플라스틱을 더 빠르고, 완벽하게 분해하는 것, 그리고 TPU 이외 다른 플라스틱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조나단 포코르스키 UCSD 재료과학 연구센터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새로운 유형의 바이오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산업의 환경 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코르스키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처럼 미생물을 추가 투입하지 않고도 스스로 분해될 수 있는 기술은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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