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사진제공 넷플릭스

삼각관계는 어렵다, <삼체>

    요즘 핫한 드라마는 중국의 SF 작가인 류츠신(Liu Cixin, 1963~) 원작인 <삼체>이다. 이 작품은 이미 SF 계의 노벨상이라는 ‘휴고’상 장편 부문상을 받아 SF 마니아에게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광대한 시간과 공간의 설정, 꼼꼼한 과학이론의 배치는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보는 듯하다.
    어느 날 지구의 실험 기기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만일 이 측정치가 맞는다면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 올린 과학 기술이 모두 물거품이 될 상황이다. 일부 촉망받는 과학자들은 의문의 살해를 당하거나 자살하기 시작한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이야기는 다시 1960년대 중국으로 돌아간다. 문화대혁명의 피바람 속에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홍위병들에게 처참하게 맞아 죽는 것과 어머니의 배신을 목격한 예원제는 깊은 슬픔 속에 외몽골 벌목 현장으로 보내진다. 하지만 그녀의 재능을 높이 산 정부는 홍안 천문기지로 보내 버리고 평생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가둔다.
    영민한 그녀는 기지가 외계문명과의 교신을 시도하는 시설이란 것을 알게 되고, 그 목적이 다른 나라보다 성간 통신 분야에서 우위에 서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태양의 전파 증폭 현상을 연구했던 예원제는 태양을 이용하여 지금까지 누구도 보내지 못했던 강력한 전파를 외계문명에 발사한다. 4년 뒤 답장이 왔는데 내용은 ‘답장하면 우리가 가서 점령할 테니 답장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예원제는 잠시 망설인 뒤, 강경한 답장을 보낸다. ‘인류는 자구력을 잃었다. 와서 점령하라, 내가 돕겠다’
    예원제에게 연락한 외계문명은 나름 안타까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 항성이 하나뿐인 태양계와는 달리 항성이 3개인 삼체 시스템이었다. 즉 태양이 3개인 상황이었다. 궤도가 매우 불안정해서 안정적인 항세기와 극단적인 난세기가 불규칙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자기들의 세계는 예측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고, 옮겨 살만한 적절한 터전을 찾고 있었다.

<삼체>의 휴고상 수상패 / Wikimedia commons by Kcx36

삼체문제

    삼체문제로 알려진 이 상황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 프린키피아에서 언급하면서 수학계 난제로 떠올랐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두 개의 물체는 어떤 궤도 움직임을 보일지 예측이 가능하지만, 물체가 3개이면 변수가 단 하나 늘었어도 궤도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18세기 중반부터 수학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절대 만만치 않았다.

삼체문제는 특수해만 존재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는 3가지 물체가 일직선으로 유지되는 경우, 주기적인 안정적 궤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1772년 조제프루이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 1736~1813)는 3개의 물체가 정삼각형을 이루는 경우에 안정적인 주기 운동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처럼 삼체문제는 조건이 일정한 몇몇 특수한 경우에만 안정적인 해를 도출할 수 있었다.
    현재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이를 자주 이용하는데, 이 안정적인 지점을 라그랑주점(Lagrangian point)이라 한다. 이 지점에서는 상대적으로 궤도가 큰 천체의 영향을 안 받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 태양-지구 시스템에서는 다섯 군데의 라그랑주점이 존재한다.
    L1 지점은 항상 태양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미국항공우주국과 유럽우주국의 ‘태양 및 태양권 관측 위성(SOHO)’이 자리 잡고 있는데, 1995년에 수명 2년을 가정하고 보냈지만, 지금껏 잘 작동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인도의 태양탐사선 ‘아디트야(Aditya-L1)’가 자리를 잡았다. 2025년에는 미국 해양대기청의 우주전파 관측 위성(SWFO-L1)도 배치될 예정이다.
    한편 L2 지점은 태양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심우주를 관측하는 데 최적의 장소이다. 태양 쪽으로는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전기를 만들고, 태양 반대편 어두운 쪽은 언제나 관측할 수 있는 환경이다. 2023년에 배치된 제임스 웹 망원경이 이 위치에 자리 잡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관측하고 있다. 이 지점에는 이미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는 더블유맵(WMAP)과 프랑크 위성이 있고 적외선 관측 우주망원경인 허셜(Herschel)이 있다. L1과 L2는 지구에서 약 150만km 떨어져 있다.
    라그랑주점은 우주선의 스윙바이(Swingby)에 애용되는 지점이다. 우리나라의 달 탐사 위성 ‘다누리’도 L1 지점을 들렸다가 달로 가는 전이궤도를 이용했다. 이 지점에서는 관성이 중력과 상쇄되어 적은 연료로도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공위성을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달에 보낼 수 있는 궤도로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애용되고 있다. 중국의 ‘창어’, 인도의 ‘찬드라얀’, 이스라엘의 ‘베레시트’ 그리고 일본의 ‘카구야’도 이용했다.
    지구-달 시스템에서도 똑같이 5개의 라그랑주점이 존재한다. 상상하는 것처럼 이 자리도 선점을 위한 경쟁이 뜨겁다. 이 경우 달 뒷면인 L2에 중국은 인공위성 ‘췌차오’를 배치해 달 뒷면 착륙선 ‘창어’의 통신을 담당하고 있다. 나사도 달 궤도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를 운용할 계획이다.

일반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1887년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 연합국의 왕 오스카르 2세는 자신의 60세 생일을 맞아 수학 경시대회를 개최했다. 문제 중 하나가 태양계의 안정성에 대한 것, 즉 삼체문제였다. 지구의 궤도가 앞으로도 안정적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를 증명한 사람이 당시 32세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 1854~1912)였다.
    하지만 논문 발표 후에 학자들이 초기 가정에 문제를 제기했고, 푸앵카레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벌써 논문은 출판되어 배포된 후였고, 그는 상금 1,000마르크에 자기 돈 2,500마르크를 더해서 개인적으로 논문집을 부랴부랴 회수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삼체문제에서 일반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대신 혼돈 이론(Chaos Theory)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영예를 안게 된다.

외계문명의 고향은 어디?

    삼체 문명은 자신들 행성계의 안정적인 주기를 파악하고자 맹렬히 노력하였다. 영화에서 그 노력이 컴퓨터게임으로 묘사된다. 문명의 멸망과 탄생을 반복하면서 결국 그들은 항세기와 난세기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에서 예원제는 메시지를 보낸 후 8년 만에 답장을 받는다. 메시지를 받은 즉시 답장을 보냈다면 지구에서 4광년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모델이 된 행성계는 지구에서 4광년 떨어진 알파 센터우르스 자리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로 알파 센타우리 A와 알파 센타우리 B 그리고 프록시마(C)까지 3개의 항성으로 이루어진 다중성계이다. 적위가 남위 60도 50초라 필리핀 정도까지 내려가야 보이기 시작한다.
    이 행성계는 이미 유명한데,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외계인들이 철거 공고를 붙인 곳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2009)에서 판도라의 모행성 폴리페모스(Polyphemus)로 묘사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 드라마 <로스트 인 스테이스>에서도 등장한다.
    아직 센터우르스 자리에 생명체가 사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2016년 메타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등이 프록시마(C)를 탐사하기 위해 28 g짜리 우주선을 보내는 스타샷(Starshot)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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