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 과학읽기

유용하 서울신문 과학전문기자
문화체육부장

5잔 이상의 커피,
장수와 암 예방 비결이라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향기다.
집 근처에서 커피콩을 볶으면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어 그 향기를 모두 받아들인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커피에 대해 남긴 말이다.
겨울은 커피의 계절이다.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냄새의 확산 속도가 느려 커피 향이 유난히 진하고 향기롭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이 아침 일을 시작하기 전 멍한 두뇌를 깨우고, 점심 식사 직후나 오후에 밀려드는 나른함을 쫓아내기 위해 커피를 찾는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눈 내리는 날 통유리로 된 전망 좋은 카페에서 갓 내려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망중한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실용적 측면과 낭만을 떠나 과학자와 의학자들은 커피의 다양한 효과에 관해 관심을 두고 연구한다. 심지어 컴퓨터 과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커피 향을 더 풍부하고 맛도 좋게 만들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카페인 포함 여부를 떠나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것이 두경부암 발생 위험을 최대 41 %까지 낮출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Unsplash

이런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대(UCLA) 공중보건대, 유타대 의대 예방의학과 연구진을 중심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5개국 28개 대학과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국제 공동 연구팀은 커피와 차를 섭취하는 것이 구강암과 인후암을 포함한 두경부암 발병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를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암’(Cancer)에 지난해 12월 23일 자로 발표했다.

두경부암은 코, 부비동, 구강, 안면, 후두, 인두, 침샘, 갑상선 등에 발생한 모든 종류의 악성종양으로 전 세계에서 7번째로 흔한 암으로 꼽힌다.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것이 두경부암 발생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들이 이미 발표되기도 했지만, 결과가 일관성 없다는 점이 지적돼왔다.

연구팀은 전 세계에서 두경부암과 커피, 차 음용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14개 연구 자료를 메타 분석했다. 연구팀은 두경부암 환자 9,548명과 일반인 1만 5,783명을 대상으로 카페인 포함 커피, 디카페인 커피, 차를 하루, 주, 월, 년 단위로 얼마나 마시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카페인 커피를 매일 4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두경부암에 걸릴 확률이 17 %, 구강암은 30 %, 인후암은 22 %, 인두암은 무려 41 % 낮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더라도 구강암에 걸릴 확률이 25 %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고, 차를 마시는 것도 하(下)인두암 발생 확률을 29 % 낮추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를 이끈 유안-친 에이미 리 유타대 의대 교수는 “커피와 차 섭취가 암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들이 있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카페인이 없는 커피들도 건강상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스위스 바덴 칸톤 병원, 취리히 대학병원, 바젤 대학병원, 취리히대, 베른 대학병원 공동 연구팀은 하루 5잔 이상 커피를 마시면 인지 기능 저하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난해 12월 25일에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미국 심장협회 저널’(JAHA) 최신 호에 실렸다.

심방세동은 심장에서 발생하는 빠른맥의 형태로 불규칙한 맥박을 일으키는 부정맥 질환이다.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심방세동이 오래되면 뇌졸중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연구팀은 스위스 심방세동 코호트 연구에 참여한 사람 중 평균 연령 73세의 남녀 2,413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 동안 하루 커피 섭취량을 조사하고, 최근 8년간 뇌졸중, 혈액 염증 지표, 혈액 응고, 뇌 영상, 인지 검사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카페인이 포함된 커피를 하루 5잔 이상 마시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지 않거나 하루 한 잔 미만으로 마시는 사람들보다 인지 측정 점수가 더 높게 나왔다. 커피 섭취량이 많은 사람은 하루 1잔 미만으로 마시는 사람들보다 과제 처리 속도, 시각 운동 조정, 주의력 점수가 11 % 높았고, 인지 나이는 6.7세 더 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혈액 염증 지표도 매일 5잔을 마신 사람들이 1잔 미만 마신 이들보다 20 % 이상 낮았다.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카페인, 마그네슘, 비타민 B3(니아신) 등 활성 성분 또는 염증 유발 화학물질을 줄이는 커피 속 또 다른 성분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영양학회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하루 3~5잔의 블랙커피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미국 심장협회에서는 라테, 마키아토 등의 커피 음료는 칼로리가 높고, 설탕과 지방이 첨가된 경우가 많아 커피 섭취에 따른 건강상 이점을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루 3~5잔의 블랙커피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하루 5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체내 염증 지수가 낮아 인지 기능 저하도 늦춰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Shutterstock

그런데, 이런 연구 결과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과연 하루에 커피 5잔을 마시면 수면에는 문제가 없을까’, 그리고 ‘1잔은 어느 정도를 한 잔으로 생각해야 할까’라는 것이다. 독자들도 가끔 ‘도대체 몇 잔을 마시는 것이 적당하냐’고 질문해 오기도 한다.

다행히 이번 연구뿐만 아니라 커피와 건강 관련 연구를 많이 진행하는 미국심장협회에는 기준이 있다. 미국심장협회에 따르면 커피 한 잔은 8온스로 237 ㎖다. 유명한 미국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판매하는 숏 사이즈가 237 ㎖, 흔히 선택하는 톨 사이즈는 355 ㎖, 그란데는 473 ㎖, 가장 큰 벤티 사이즈는 591 ㎖다. 그러니, 톨 사이즈로는 하루 3잔, 그란데 사이즈로는 2.5잔, 벤티 사이즈로는 2잔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몸에 좋더라도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공복 상태에서 커피를 마시면 위장이 자극을 받아 속 쓰림 증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고, 불면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아무리 커피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마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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